All about Coffee

Coffee Lab

원두부터 맛있는 커피 한잔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Coffee Lab

커피의 ‘급(Grade)’을 달리하는 법

커피 향미와 등급을 달리하는 다양한 생두 가공방법

2018.07.18. 오전 10:00 |카테고리 : Coffee Lab

좋은 커피체리는 모두 좋은 커피가 될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커피 체리라도 가공 과정에 소홀함이 있다면 그 신선함과 향미를 잃을 수 있다. 커피나무가 자라나는 원산지의 환경이나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생두의 가공 과정도 커피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 원산지에서 그 과정이 진행되어 우리가 그 중요성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가공의 퀄리티가 커피의 등급도 달리할 수 있기에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정 중 하나이다. 이렇듯 이번 컨텐츠에서는 커피의 ‘급’을 달리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가공방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마시는 커피가 원산지에서 거쳐온 과정을 알고 있다면 좀더 진하고 깊은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바리스타룰스_매일유업_커피원두_커피생두

생두의 가공 방식은 크게 습식법이라 불리는 워시드, 건식법이라 불리는 내추럴 프로세싱으로 구별되는데, 두 가공법을 혼합하여 변형한 가공법들도 존재한다. 이는 지역적인 여건(습도, 일조량, 물 공급 여부 등)에 따라 결정되며 농장의 규모에 따라 동일한 방식이라도 차이가 있다. 풍부한 노동력을 갖추고 있어 전통적 방식으로 처리하는 곳도 있고 현대화된 시설과 장비를 이용해 대규모로 처리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처리 방식은 일률적이지 않으며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물의 소비를 최대한 줄여 환경에 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친환경적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1. 워시드 프로세싱(Washed Processing)

바리스타룰스_매일유업_워시드 프로세스

Nimon/shutterstock.com
커피 체리를 세척하는 과정

워시드 프로세싱은 말 그대로 물을 사용하는 가공방법으로 콜롬비아, 탄자니아, 케냐, 과테말라 등 수자원이 풍부한 국가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는 수확한 커피 체리를 과육 제거기로 껍질을 탈각한 후에 점액질이 부착된 파치먼트를 수조에 넣어 자연발효시키는 방법이다.

외부 온도와 수조의 수온에 따라 발효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하와이 등지에서는 8시간 정도 발효시키지만, 중앙아메리카 등 고도 1,500m 전후의 산지에서는 36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건조 공정을 위해 발효 후 다른 수조에 옮겨져 한 번 더 씻어지거나 건조장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씻어내기도 한다.

씻어낸 파치먼트는 파티오(Patio)라고 불리는 건조장에서 건조한다. 이때 생두 내에 포함된 수분의 수치가 11~12%가 되도록 일주일가량 건조한다. 그 후에는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 2개월 정도 보관하여 수분치와 건조 상태를 균일하게 한다. 워시드 프로세싱을 거친 생두는 대개 깨끗한 녹색 빛의 생두가 만들어지며, 향미가 클린하고 산과 바디의 밸런스가 좋은 커피가 만들어진다. 워시드 프로세싱을 이용한 대표적인 커피로 우리에게 세계 3대 커피로 익숙한 하와이 코나(Hawaiian Kona)와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콜롬비아 커피가 있다.


2. 내추럴 프로세싱(Natural Processing)

바리스타룰스_내추럴_건식법_체리 건조

© baristarules.maeil.com
커피 체리를 건조하는 모습

자연 건조식이라고도 불리는 내추럴 프로세싱은 공정이 단순하고 물 사용이 제한적인 지역에서도 가능한 공정으로 브라질, 에티오피아, 예멘 등지에서 전통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다른 가공법에 비해 결점두가 섞이기 쉬워 일정한 퀄리티의 원두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은 대부분 내추럴 프로세싱을 이용하는데, 규모가 큰 농장에서 기계 수확을 하거나 가지를 통째로 훑어 체리를 한꺼번에 수확하기 때문에 미숙두의 혼입이 많다. 또한 땅에 떨어진 커피 콩이 혼입되어 흙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추럴 프로세싱을 거친 커피는 품질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브라질 No.2 등급은 300g 중 결점두가 4개 이내이지만 그보다 미숙두의 혼입이 더 많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커피의 고향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또한 대부분 내추럴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 G-1부터 G-4가 생산되고 활발히 유통된 지 꽤 오래되었다. 생두 300g 중 결점이 26~45개인 G-4는 커머셜 커피(Commercial Coffee, 커피 공정이 일정 수준 내에서만 관리되는, 결점두를 일정 범위 내에서 허용하는 커피)로 유통되며 주로 저가 블렌딩이나 인스턴트커피 혹은 조제커피음료에 사용된다. 더 높은 등급인 G-1 과 G-2는 프리미엄 등급으로 브루잉커피 같은 싱글오리진과 일부 블렌딩에 많이 쓰이고 있다. 이 등급의 커피는 수확한 체리에서 핸드피크 공정을 통해 미숙두를 제거하기 때문에 미숙두의 혼입이 적고 깔끔한 향미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체리를 통풍이 잘 되는 나무로 짠 아프리칸 베드(African Bed)에서 균일하게 건조하기 때문에 훌륭한 등급의 커피를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내추럴 프로세싱은 커피 체리를 물로 씻어내는 워시드와는 다르게 진한 바디감과 복합적인 향미가 만들어지지만, 미숙두의 혼입 등 결점두가 섞이기 쉬워 체리의 선별 여부가 향미에 큰 영향을 준다. 미숙두는 떫은맛의 원인이 되고 잘못 발효된 콩의 혼입은 날카로운 신맛과 자극적이고 강한 초산이나 곰팡이 냄새 등 불쾌한 냄새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 체리 선별 과정을 모두 거친 내추럴 가공방식의 체리는 바디감과 함께 독특한 풍미를 갖게 되어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커피가 탄생할 수 있다. 내추럴 중 가장 유명한 커피로는 파나마 게이샤 내추럴이 있고 에티오피아 시다모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워시드 방식이 중심인 중앙아메리카의 파나마 등에서도 내추럴 프로세싱을 시도하는 농장주들도 증가하고 있다. 중앙아메리카는 수확 후 우기에 접어들어 습기가 많은 편이기 때문에 건조 일수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은 내추럴 방식이 적합하지 않지만 새로운 상품으로서의 요구 및 수요가 많아, 생산량은 적지만 새로운 시도의 내추럴 커피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3. 펄프드 내추럴 프로세싱(Pulped Natural Processing)

바리스타룰스_가공법_펄프드 내추럴

Dennis Tang/flicker.com
펄핑된 파치먼트를 파티오에서 건조하는 모습

펄프드 내추럴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미숙두의 혼입률이 높은 내추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0 년대 초반 브라질에서 개발된 가공방법이다. 펄프드 내추럴 프로세싱은 우선, 수조에서 완숙두와 미숙두, 과도 완숙두를 선별하고, 펄핑할 때 다시 한 번 육안으로 고품질의 커피 체리를 선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체리를 수조에 넣으면 잘 익은 완숙두만이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른 디펙트를 걷어내면 된다. 가라앉은 체리를 과육 제거기로 넘기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좋은 완숙두만 핸드피크로 골라내어 사용하게 되면 결점두를 최소화해 좋은 등급의 커피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선별 과정이 끝나고 점액질이 거의 그대로 붙은 상태의 파치먼트를 건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펄프드 내추럴 가공법이다. 여기에 점액질의 양을 조정한 뒤 건조해 향미에 변화를 주는 가공방법을 허니 프로세싱(Honey processing)이라 부른다. 이 방법은 중앙아메리카에도 일부 확산되어 지금은 코스타리카, 파나마, 니카라과 등 여러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으나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많은 양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허니 프로세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매혹적인 코스타리카 커피의 비밀 (2)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펄프드 내추럴 프로세싱을 거친 생두는 미숙두의 혼입이 적어 결점두의 맛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내추럴처럼 독특한 향미를 지닐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4. 수마트라식(Sumatra)
 수마트라_인도네시아_바리스타룰스

© baristarules.maeil.com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

수마트라식 가공법은 인도네시아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수마트라에서만 행해지는 특수한 방법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델링이라고 불리는 커피가 대개 이 방법으로 가공된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농가의 대부분이 소농가이며 체리를 수확한 후에 과육을 제거하고 남은 파치먼트 상태로 반나절에서 하루 동안만 건조하기 때문에 수분이 완전히 날아가지 않고 수분치가 높은 상태의 파치먼트가 된다. 그리고 난 후 파치먼트를 탈각하여 생두 상태로 천일건조하는 방식이다.

수마트라는 비가 많은 지역으로 주된 수확기 외에도 계속해서 체리를 수확할 수 있었고, 네덜란드의 식민지배하에 있을 19세기에 커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빨리 건조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었다고 한다. 수마트라식 가공의 배경에는 이처럼 어두운 과거가 드리워져 있지만 열악한 가공환경에서 우연하게 독특한 향미를 얻게 된 것이다. 수마트라식 가공을 거친 커피는 땅, 삼나무, 향신료, 발효된 과일, 코코아, 허브, 가죽, 담배 등 다양한 향미를 지니고 있어 약 2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커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컨텐츠에서 소개한 여러 가지 방식들처럼 생산국마다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는 다양한 가공방법이 있다. 브라질은 대량 생산을 하는 농원이 많아서 넓은 건조장을 사용하는 내추럴 방식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 방식은 미숙두의 혼입이 많아 펄프드 내추럴로 바뀌어 가는 곳도 있다. 에티오피아와 르완다 등의 일부 지역처럼 내추럴에서 워시드 프로세싱으로 전향하면서 품질이 향상된 농가도 있다.

더욱 나은 향미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농가들은 가공 공정을 연구, 개발하며 거듭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업계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계속해서 품질 향상을 생산자들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고품질의 커피를 원하는 스페셜티 커피업계는 경쟁적으로 새로운 컨셉의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커피 시장의 연구개발이 지속된다면 커피 애호가는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동시에 커피업계는 끊임없이 발전해나갈 것이다.


[참고자료]
COFFEE INSIDE, 유대준, 해밀, 2009.
Specialty Coffee Tasting, 호리구치 토시히테, 웅진 리빙하우스, 2015.
⑪ 그린커피의 맛과 향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신혜경, 조선비즈,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