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 서리가 내리고 극심한 기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기상청 발표가 난다고 가정해보자. 혹자는 상파울루에 출장이나 휴가를 조정하거나, 또 다른 이는 브라질에 머물고 있는 지인에게 안부를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귀를 쫑긋하는 사람은 커피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브라질이 전 세계 최대 커피 생산지인만큼 생두 가격이 폭등하는 등 커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반대로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이 과도하게 증가하면 가격은 폭락하게 된다. 이처럼 극심한 가격 변동은 불안정한 생산환경을 조성하고 임금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자의 생계가 안정화될 수 없다. 이 경우 생산 인력이 산업에서 대거 축소되는 등 커피 공급의 양적 및 질적 측면에서 상당한 손해다. 즉,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커피 산업에서 생산이 안정화되지 못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고품질의 커피를 지속적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관 중 하나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서스테이너블 커피(sustainable coffee)’는 생산자는 안심하고 커피를 만들고 소비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안정적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개념에서 탄생했다.
유기농 커피빈 사용 인증마크가 찍힌 커피 마대 자루/fliker.com
커피 애호가일지라도 매일같이 마시는 커피의 생산현실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서스테이너블 커피가 지니는 사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커피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서스테이너블 커피가 전 세계 커피 시장의 존속을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몸에 섭취되는 음식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현명한 소비자라면, 또한 미래에도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자 하는 커피 애호가라면, 생산지의 환경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현재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종 NGO가 생산 이력, 생물 다양성 보존, 노동자 인권 보호 등의 관점에서 기술 지도를 하며 공통의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에 부합한 농원과 농협에 인증을 부여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유기농 커피, 재배환경을 고려한 커피 인증제, 그리고 생산자를 보호하는 공정무역 커피 등 생산자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다양한 인증마크를 통해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어떤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 무농약으로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유기농 커피’
미국 농무부에서 발급하는 유기농식품에 대한 인증 마크/wikimedia.com
서스테이너블 커피라 하면 흔히 유기농 커피를 떠올리기 쉽다. 그렇다면 유기농 커피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농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이하 USDA)가 발표한 유기농 재배에 대한 정의를 참고하도록 하자.
“농업 생산물을 원활히 재배하기 위해 비료를 주고 제초제를 뿌리는 행위나 유해균과 해충 박멸을 위해 살충제를 살포하는 행위는 허용하지만 화학적 합성물이 들어간 약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류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토양 보존을 위해 호르몬을 이용한 성장촉진제를 투여하거나 항생제를 먹인 가축의 배설물과 하수찌꺼기 등을 비료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유전자변형농산물이어서도 안 된다.”
이처럼 유기농 커피(Organic Coffee)는 커피를 생산할 때 기존에 사용하던 농약이나 합성물질, 오염된 퇴적물이 섞인 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은 좋은 땅에서 생산한 커피를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유기농 방식은 그늘 경작(Shade grown)으로 재배해 비료 사용을 억제하고, 멀칭*(mulching) 작업을 통해 작물이 자라나는데 도움이 되는 익충(益蟲)을 밭에 들여오는 등 주변 환경을 보호하고 생물 다양화에 기여한다.
지난번 원두 생산지를 가다 (12) – 멕시코 커피 콘텐츠를 통해 멕시코가 그늘 경작법을 사용한 유기농 커피의 대표적인 생산국가라는 점을 이야기한 바 있다. 유기농 커피는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도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멀칭(mulching)이란? 농작물을 재배할 때 경작지 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을 뜻한다. 덮어주는 자재를 멀치(mulch)라고 하며, 예전에는 볏짚, 보릿짚, 목초 등을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폴리에틸렌이나 폴리염화비닐 필름을 이용한다. 토양 침식 방지, 토양 수분 유지, 지온 조절, 잡초 억제, 토양 전염성 병균 방지, 토양 오염 방지 등의 목적으로 실시된다.
2) 환경을 지켜 지속가능성을 이어가는 ‘커피 인증제도’
유기농법에 주로 사용되는 그늘 경작법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그늘 경작이 유기농 커피를 재배하는 주된 경작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커피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시작된 경작 방식은 아니다. 커피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를 떠올리면 이 경작법의 기원을 쉽게 추리해볼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고지대 그늘에서 자생하던 커피나무는 본래 직사광선을 싫어한다. 그런 연유로 커피나무가 다른 국가들로 퍼져나가면서 커피나무의 원산지와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셰이드 트리(Shade Tree)’를 심게 되었다고 한다. 셰이드 트리는 커피나무 주위에 심어진 잎이 넓적하고 키가 큰 나무로, 커피나무에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셰이드 트리의 낙엽이 커피나무가 자라나는 토양에 질소를 공급하기 때문에 환경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덕분에 커피나무의 수확량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나무의 수명도 길어질 수 있는 것이다.
(1) 새들의 공존까지 생각하는 ‘버드 프랜들리 인증’
스미소니언 버드 프랜들리 인증 마크/freshcup.com
그늘 경작법은 이뿐만 아니라 철새의 서식지를 확보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대 한 생물학자의 발표에 따르면, 중남미의 전통적인 커피 농원을 서식처로 삼는 겨울 철새들이 매년 줄고 있다고 한다. 커피나무를 개량 품종으로 바꿔 심은 뒤 화학 비료를 사용하며 셰이드트리를 벌목해버린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대 철새에 대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는 ‘스미소니언 철새센터(SMBC*, Smithsonian Migratory Bird Center)’는 전통적인 농원에서 생산되는 셰이드 그로운 커피에 대한 기준과 인증 라벨, ‘버드 프랜들리(Bird Friendly)’ 인증을 개발했다. SMBC의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유기농 인증을 받아야 하며 커피 농장에 최소 10종의 자생수목이 있고, 농지의 40% 이상이 그늘에 덮여 있어야 한다. 버드 프랜들리 인증 라벨이 개발되고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셰이드 커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서스테이너블 커피에 대한 개념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2) 농작물의 재배 환경을 보호하는 ‘레인포레스트 얼라이언스 인증’
레인포레스트 얼라이언스/wikipedia.com
열대우림을 보호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설립된 국제 NGO ‘레인포레스트 얼라이언스(Rainforest Alliance, 이하 RFA)’와 생산자의 생활 향상과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 NGO ‘컨서베이션 인터네셔널(conservation international)’에서도 커피 인증을 한다.
RFA 인증은 농장이 환경, 사회, 경제적 요인에 관한 지속 가능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인증받았음을 나타낸다. 이 인증을 받으려면 보존단체들의 연합기관인 지속가능한 농업 네트워크(Sustainable Agriculture Network, 이하 SAN)가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은 생물 다양성 보존, 생활 및 인간 복지의 개선, 천연자원 보존, 효과적인 계획 및 농업 관리 시스템 등 지속가능한 농업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커피 마대에 이 인증을 찍기 위해서는 커피 농가에서 생산된 커피콩 중 30%만이 RFA 조건을 충족하면 된다.
3) 최저 구매 가격 보장하는 ‘공정무역 커피’
국제 공정무역 인증 마크/wikimedia.com
공정무역(Fair Trade)은 개발도상국의 소농가 등에서 생산한 농산물에 대해, 최저 구매 가격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공정거래로 보장되는 안정된 수입을 기반으로 농민들은 자신의 땅과 재산을 지키고 생활과 노동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스스로 더 나은 생산품을 개발하는 데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9세기 무렵 아라비아반도에서 처음 커피가 재배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긴 커피 역사에서 커피 생산자들의 열악한 삶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고작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이르러 소비자 중심으로 공정한 거래, 공정무역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었다. 커피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생산환경과 공정거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정무역의 필요성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커피의 경우 생두 가격이 폭락할 경우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은 소득의 큰 타격을 받게 되지만 선진국의 카페에서 판매되는 커피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커피가 공정무역의 대표 상품이 된 것도 이렇게 생산국과 소비국의 불평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소비자로부터 시작된 공정무역 운동은 이후 옥스팜(Oxfarm), 트레이드크라프트(Tradcraft) 등 여러 협회들로 발전했고, 2003년 스타벅스(Starbucks)와 2005년 네슬레(Nestle)의 참여로 커피 시장에서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는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서스테이너블 커피의 인증마크는 생산자와 환경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일부 의식 있는 농장들은 스페셜티급의 생두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거나 친환경적인 재배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그 인증 절차와 비용이 부담되어 인증마크를 부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한 대형 로스팅 회사나 마트에서 인증 커피를 취급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일반 소비자들에게 인증 커피에 대한 인지는 떨어지는 편이다. 고품질의 커피가 많은 사람에게 선택되고 그것이 서스테이너블 커피가 되려면 불필요한 인증절차는 간소화하고 인증 커피에 대한 정확한 홍보가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커피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바른 소비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아닐까.
[참고 자료]
커피교과서, 호리구치 토시히데, 벨라루나, 2010.
커피학개론&커피향미, 최치훈, 아이비라인, 2016.
https://www.freshcup.com/coffee-certif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