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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커피의 치명적 매력

역사 속 커피를 사랑한 사람들

2016.02.15. 오후 04:33 |카테고리 : Coffee Story

“아, 이제 더 이상 커피 잔을 들 수 없구나.”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은 다름 아닌 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애통함이었다. 루소의 이 한 마디는 살아 생전 그가 커피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체 커피의 어떤 점이 지금까지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깊은 사랑에 빠지게 한 것일까. 독일의 작곡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염소 고기에 불과하다.”라고 고백할 만큼,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은 물론 집중력을 높이고 창의적인 사유에 도움을 주는 커피를 칭송했다. 그래서일까. 실로 역사 속 많은 위인들의 삶의 한 귀퉁이에는 언제나 커피가 있었다.

11 루소 (좌), 볼테르, 루소, 랭보 등 유명인들의 단골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 (우)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철학자 루소와 볼테르는 파리에서 최초로 생긴 카페 프로코프에서 커피를 마시며 정치, 경제, 사회를 비판하고 자신들의 예술과 삶을 이야기하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프랑스 시민 혁명의 사상적 근간이 이 곳의 두 사람의 커피 향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해질 정도로 두 사람에게 모두 커피는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루소는 카페에서 철학자들과 함께 사상을 나누는 커피 타임보다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감성을 나누는 커피 타임에서 더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는 젊었을 때 자신의 후견인이자 연인이었던 바랑 부인과 산책을 나가 우유를 탄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곤 했는데, 그의 자서전 <고백록>에서 ‘이때가 하루 중 우리가 가장 평온하고 편안하게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연인과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던 그 곳을 ‘지상낙원’이라고까지 표현한 루소는 삶의 행복을 다름 아닌 커피에서 발견한 것이다.

 

12 볼테르(좌)

루소와 더불어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볼테르(François Marie Arouet, 1694-1778) 역시 엄청난 커피 마니아였다. 그는 하루에만 커피를 40~50잔을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커피 마니아 수준을 넘어 역사상 가장 심한 커피 중독자로도 유명했다. 주치의가 커피 때문에 죽을 수 있다고까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볼테르의 커피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는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미 커피에 깊이 중독되었었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84세까지 장수했다.

그렇다면 커피도 몸에 맞는 체질이 따로 있는 걸까? 프랑스 문학의 거장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커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카페인 과다 복용으로 생을 일찍 마감했다. 스스로를 ‘문학노동자’라고 칭했던 발자크는 하루 15시간 이상씩 글을 쓰는 일 중독자이기도 했다. 그는 33세 나이에 유부녀인 한 백작 부인에게 반했는데, 남편이 죽고 나면 결혼하겠다는 그녀와의 약속 때문에 하루 4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 그의 나이 50이 넘어서야 결혼에 성공했지만 불행히도 5개월 만에 죽고 만다. 발자크에게 커피는 현실에서 쏟아지는 졸음과 피곤함을 잊게 하는 진통제이자,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글쓰기를 지속하게 해준 유일한 각성제였다.

13 고종황제

반면에 커피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인생의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로도 잘 알려진 고종황제(1852-1919)이다. 1898년 기록에 의하면 고종 황제는 식사를 마친 후 황태자(훗날 순종)와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몇 모금 마시던 그는 평소와 향이 다르다면서 곧바로 뱉어버린다. 반면 아직 커피의 맛을 잘 알지 못했던 황태자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는데, 알고 보니 앙심을 품은 김홍륙이 커피 속에 아편을 타 고종의 암살을 시도했던 것이었다. 평소 커피 향을 바로 구별할 정도로 지대했던 커피 사랑이 그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14 베토벤 / 브람스 / 바흐

이 외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과 태도로 커피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보여 준 사람들도 존재했다.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고 말하며 늘 원두 60알을 세어 한 잔의 커피를 내려 마셨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값비싼 커피 값을 마련했을 베토벤을 생각하면 그의 커피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자신이 먹을 커피는 자신만이 내리고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까다로웠는데 자신이 만드는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크게 갖고 있지 않았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커피 애호가로도 유명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당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해 커피하우스에서의 공연을 목적으로 [커피칸타타]라는 음악을 작곡하기까지 했다. 딸에게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이를 거부하는 딸의 실랑이가 주된 내용인 이 곡은 많은 커피하우스에서 연주됐고 후에 세계 최초의 커피 광고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커피를 사랑하는 방식과 커피와 함께 한 인생은 모두가 달랐지만, 이들이 마신 한 잔의 커피 속에는 그들이 살아온 인생과 삶의 가치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커피의 치명적인 매력에 이끌렸던 사람들. 그들은 이 한 잔의 커피가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게 할지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커피 한 잔이 그러한 것처럼.

[참고자료]
이용철.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네이버캐스트
박성천. “연재기획 5 [ 커피를 사랑한 사람들 ]”. 월간한국인
박은주. "'문학노동자' 발자크와 커피". 조선일보
육성연. “[coffee 체크] ‘커피가 없었다면…’ 역사의 한 획은 어디서”. 헤럴드경제
최은규. “바흐, 커피 칸타타”. 소니 뮤직
김성연. “커피 한 잔에 담긴 음악”. 월간객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