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로 소개할 원두 생산지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 ‘커피의 고향’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Ethiopia)다. 국토 절반 이상이 해발 2,000m 이상의 고원 지역으로 적도 근처에 위치해있어 커피 재배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다른 생산국에 비해서 기계화나 산업화는 더딘 편이다. 그래서 아직도 농장이 아닌 야생의 상태로 재배되거나 유기농법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생산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품종이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품종도 많다고 한다. 커피의 고향, 아직까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커피 세계가 존재하는 에티오피아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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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커피의 주요 특징
먼저 커피 발생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발생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은 에티오피아만이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Yemen)까지 두 곳인데,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바로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Kaldi) 이야기다. 그는 염소들이 이상한 붉은 열매를 먹고 기운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기심에 직접 열매를 먹어본 칼디는 자신도 역시 기운이 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했고 이를 신기하게 여겨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전했다. 수도사들은 처음에 이 이상한 열매가 악마의 열매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불 속에 던졌지만 이내 불 속에서 나는 향긋한 커피 향에 이끌려 커피를 음용하기 시작했고 그 후 커피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해 기도할 때 커피를 음료로 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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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주전자 제베나를 사용하는 커피 세레모니 준비
이렇게 커피 발생지로서 커피의 역사가 깊은 에티오피아는 특별한 커피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커피를 마시는 전통 의식인 ‘커피 세레모니(Coffee Ceremony)’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일 때도, 손님을 대접할 때도 이 예식을 통해 커피를 마시는데, 단순히 커피를 끓여내는 것이 아니라 생두를 씻고, 볶고, 분쇄하고 끓이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제베나(Jebena)라고 하는 전통 커피 주전자를 사용하며, 한 자리에서 총 3번 커피를 추출하여 진한 커피부터 연한 커피까지 세 가지 맛의 커피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 첫 잔은 우애, 두 번째 잔은 평화, 세 번째 잔은 축복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며, 이 커피 세레모니는 현지어로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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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에 담긴 커피 혹은 분나
우리는 여기서 ‘분나’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분나(Bunna 혹은 부나, Buna)는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Coffee)라는 표현은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인 카파(Kaffa)의 지역명이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단어이다. 칼디 전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이 지역은 에티오피아의 서남쪽에 있는데, 이 카파를 중심으로 에티오피아의 주요 커피 산지가 밀집되어 있다. 예가체프(Yirgacheffe), 시다모(Sidamo), 짐마(Djimmah), 하라(Harrar), 리무(Limmu) 등이다. 에티오피아는 지역명이 그대로 원두 이름으로 사용되어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명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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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된 커피
원두 이름은 심플하게 지역명으로 부르는 에티오피아지만, 커피의 향미는 지역별로 서로 개성이 뚜렷하다. 특히 개성이 강한 커피가 ‘커피의 귀부인’이라고 불리는 예가체프다. 세련된 향미의 스페셜티 커피로 많이 유통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하라 커피는 흙향이 특징인데 그 중 블루베리 등의 과일향미가 나는 것은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하라 지역의 커피는 프랑스의 시인 랭보가 좋아했던 커피로도 유명하다. 시다모 커피는 과일향부터 견과류와 허브향까지 복합적인 향미를 내며, 짐마와 리무 지역의 커피는 시다모 지역에 비해 다소 온화한 향미를 가지고 있다.
주요산지 |
하라(Harrar), 예가체프(Yirgacheffe), 시다모(Sidamo) 등 |
재배품종 |
아라비카(Arabica)를 비롯한 토착 재래종 |
수확시기 |
10월 ~ 12월 |
정제법 |
워시드, 내추럴 |
등급분류 |
8 등급 (결점두에 따른 분류) |
대표커피 |
하라(Harrar), 예가체프(Yirgacheffe), 시다모(Sidamo), 짐마(Djimmah), 리무(Limmu) |
전체적으로 에티오피아 커피는 다양한 품종의 영향으로 꽃향, 허브향, 감귤계 과일향이 어우러진 특유의 향미가 나며 커피의 등급은 생두 300g 당 결점두 수를 기준으로 Grade 1에서부터 8까지로 구분한다. 커피의 수확은 10월부터 12월까지이며, 정제법은 워시드와 내추럴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등 급 |
결점두(생두 300g 당) |
---|---|
Grade 1 |
3개 이하 |
Grade 2 |
4 ~ 12개 |
Grade 3 |
13 ~ 25개 |
Grade 4 |
26 ~ 45 개 |
Grade 5 |
46 ~ 100 개 |
Grade 6 |
101 ~ 153 개 |
Grade 7 |
154 ~ 340 개 |
Grade 8 |
340 개 이상 |
그러나 에티오피아 커피의 개성을 부여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이 지역의 재배 방식이 아닐까.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재배 형태를 가든(Garden), 포레스트(Forest), 세미 포레스트(Semi-Forest), 플랜테이션(Plantation)으로 구분한다. 명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는데, 가든은 농가에서 직접 재배하는 형태이며, 포레스트와 세미 포레스트는 야생 상태로 재배되는 커피로 세미 포레스트는 최소한의 관리가 포함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플랜테이션은 대규모 농장에서 관리되는 형태를 말한다. 그리고 전체 생산의 95%가 유기농 재배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점두 수가 많아 유통되는 커피 등급이 Grade 4~5가 대부분이었는데, 점차 정부 차원의 커피 산업 지원이 확대되어 품질의 향상은 물론 생산량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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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결점두를 분리하는 작업 (우) 포장된 원두
커피의 발생지로 커피를 커피라 부르지 않는 유일한 나라, 특별한 커피 세레모니를 통해 커피를 마시며 그 의식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나라, 생산되는 커피의 절반 이상을 자국에서 소비하는 나라,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커피의 매력을 숨기고 있는 커피의 나라 에티오피아. 오늘 하루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혹은 소중한 사람과 사소한 다툼이 있어서 의기소침해졌다면, 에티오피아 커피 한 잔 어떤가. 칼디처럼 혹은 이슬람 수도사들처럼 기운이 나고 머리가 맑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 자료]
아네트 몰배르. 커피중독. 최가영(역). 서울: 시그마북스, 2015
호리구치 토시히데. 스페셜티 커피 테이스팅. 웅진리빙하우스, 2015
“커피 원산지”, 커피 이야기, 네이버 음식백과
“에티오피아의 자연”,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에티오피아 커피”,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커피의 탄생지, 짐마”, 커피로드, 박종만, 네이버 캐스트
“아프리카에는 커피가 없다”, 커피로드, 박종만, 네이버 캐스트
“에티오피아 커피 시장”, 세계의 시장을 가다, 윤오순, 네이버 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