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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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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공간, 카페

고종의 궁궐 카페부터 58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학림다방까지

2017.07.12. 오전 10:00 |카테고리 : Coffee Story

2016년 커피류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77잔으로 미국, 브라질, 일본 등에 이어 15위 앞뒤로 자리하고 있으며(국제커피협회 기준), 이 또한 매년 7%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애정을 반영하듯 전국의 커피 전문점 수는 이미 2016년에 5만개를 훌쩍 뛰어 넘었으며 이 수치는 국내 편의점(전국 3~4만개 점포)보다 많은 수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카페를 즐겨 찾고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최초로 국내에 커피가 알려진 계기와 초기 카페의 모습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접한 사람은?

고종 ©ko.wikipedia.org
 고종황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조선 26대 왕 고종이다. 다만 고종이 언제 커피를 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바로 고종이 아관파천 사건 때 커피를 접했다는 이야기이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1895)’ 이후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데, 이 ‘아관파천(1896)’ 당시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Karl lvanovich Weber)가 커피를 소개하여 고종이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떠한 문헌에는 고종이 아관파천 이전에 이미 궁중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도 있는 상황이라 사실 고종이 “언제” 처음 커피를 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고종이 궁중의 다례의식에까지 커피를 선보이고, 덕수궁 경치가 좋은 곳에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亭子), ‘정관헌’을 짓고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 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는 기록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불안한 국내 정세와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생활 속에서 그가 커피에 상당히 매료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아찔한 에피소드 하나도 전해오는데, 아관파천 당시 아편을 넣은 커피로 고종을 독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 고종은 커피 향이 이상하다며 마시지 않아 화를 피했는데, 이미 고종은 커피의 향미를 알고 구분할 정도로 애호가 수준이었던 것이다.

가장 암울했던 조선의 역사 속에서 고종이 한 나라의 군주로서 겪었을 고뇌, 그리고 그것을 위로했을 법한 커피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향. 그가 왜 커피 애호가가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그림이다.

정관헌©ko.wikipedia.org
덕수궁 정관헌의 현재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적 카페 손탁 호텔

이후 카페가 궁궐을 벗어나 일반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02년. 서울 정동 이화여고 자리에 있었던 최초의 서양식 호텔, ‘손탁 호텔’에서 시작되었다. 이 호텔은 손탁(Antoinette Sontag)이라는 독일계 러시아인 여성에 의해 운영된 곳인데 그 유래와 배경이 특이하다.

손탁은 오늘날의 로비스트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1885년 베베르가 러시아 공사로 서울에 부임해 올 때 함께 온 인물이다. 그리고 이 베베르의 소개로 구한말 궁중에 뛰어든 그녀는 타고난 처세술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게 되며, 1895년 고종으로부터 정동의 건물 한 채를 하사 받아 호텔을 운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카페의 시초가 되는 손탁 호텔이다.

이 호텔의 1층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가 있었고,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기록에는 종군기자로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방문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터 처칠(Winston Churchill) 그리고 ‘톰소여의 모험’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도 이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 호텔은 외교관과 특권층만이 드나들었던 공간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입소문이 나서 커피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한일합방을 거치면서 손탁 호텔은 퇴락의 길을 걷게 되며 아쉽게도 1918년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 초기 카페는 유명 예술가들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이경손©ko.wikipedia.org
영화감독 이경손 

손탁 호텔 이후 우리나라에 카페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일본인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1927년 비로소 최초로 한국인이 경영하는 카페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이경손이 개업한 ‘카카듀’다.

이경손은 하와이 출신이라는 정보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는 ‘미스 현’과 카카듀를 운영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국적인 실내 장식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카페명으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국적조차 모호한 카카듀라는 이름을 둘러싸고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어라느니 스페인어라느니 투우사 애인 이름이라느니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소설가 이봉구는 ‘한국 최초의 다방 카카듀에서 에리자까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경순에게 직접 카카듀의 의미를 들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 아지트인 술집 이름 ‘카카듀’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술가가 경영하는 카페였던 만큼 카카듀에서는 전람회나 문학좌담회 등의 문화예술 행사가 종종 열렸다. 톨스토이 탄생 백주년을 맞아 외국문학연구회 동인들이 카카듀에서 간담회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포스터 전람회 등이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카카듀를 시작으로 많은 문화 예인들이 카페 경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상©ko.wikipedia.org
시인 이상 모습  

‘천재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 역시 1933년부터 서울시 종로에서 ‘제비다방’을 운영했다. 이 당시 카페는 ‘다방’으로 불렸는데 1930년대 카페라는 명칭은 술과 여자가 있는 곳, 이른바 오늘날의 유흥 시설을 부르는 호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23세였던 이상은 금홍이라는 기생과 연애 중이었는데,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이 애인을 마담으로 앉혔다. 시인이자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는 제비다방의 공간을 직접 설계했는데 도로와 접한 면을 투명한 유리로, 내부의 모든 벽면을 흰색으로 디자인하여 현대의 카페처럼 안과 밖이 보이는 구조로 만들었다. 이처럼 외관부터 파격적인 제비다방에는 당대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 그리고 기자와 유학파 등의 당대 인텔리들이 몰려 들었다. 소설가 김유정, 박태원, 화가 구본웅 등이 이 다방의 단골이었다. 하지만 이상은 개점 2년째인 1935년에 경영난으로 제비다방을 폐업한다.

0712_바리스타룰스_FB_최초카페 ©baristarules.maeil.com
이상의 집 

현재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터에는 이상과 제비다방을 기억하기 위해 ‘제비다방 이상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이상의 저서와 이상을 연구한 관련 도서들이 비치되어 있어 천재 시인 이상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주말엔 넓은 테이블에 앉아 책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상과 제비다방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쉬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나라의 오랜 카페의 모습을 간직한 학림다방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은 1956년 개업하여 6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로 알려져 있으며, 개업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건너편에 위치해 서울 대학교가 관악산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대생들의 대표 휴식처로 별칭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일 정도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는 관악산으로 이전하였지만 현재까지 학림 다방은 대학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학림다방©baristarules.maeil.com
학림다방 내부 

1960년대의 고풍적이고 빈티지한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이 곳은 현재, 옛 추억을 느끼려는 중년층부터 커피를 좋아하는 젊은 층까지 두루 찾는 세대 화합의 장소이기도 하다.

거기에 학림다방은 단순히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다방’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1960년 대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과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세력들의 아지트였던 점이다. 소설가 이청준, 시인 천상병, 시인 김지하, 소설가 황석영 같은 문인과 소리꾼 임진택, 가수 전인권, 연출가이자 작곡가인 김민기 같은 이들이 단골이었다. 서슬 퍼런 시대에 철학과 역사, 예술을 논하던 ‘진보의 아지트’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각계 인사 800여명이 글귀를 남긴 학림의 방명록에는 이런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 김지하는 “학림 시절을 내게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고 적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이곳을 찾아 “오늘 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기쁩니다.”란 글을 남겼다.

부서질 듯 낡은 나무문 손잡이는 사람들의 손길에 페인트가 모두 벗겨졌을 정도로, 이 다방에는 58년이라는 세월의 흔적들이 쌓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수십년 된 낡은 소파와 테이블 10여개, 계산대 뒤편으로 빼곡히 들어찬 클래식 엘피(LP) 레코드판 1,500여장과 30여년 전에 음반사한테 얻은 클래식 연주자 사진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다. 몇 년 전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극중 도민준)이 자주 가는 단골 가게로 나오며 젊은 층에게도 많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2014년에는 서울시가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 건물 전체가 영구 보존구역으로 설정되며 한국 카페의 옛 정취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로에 들를 일이 있다면, 지인들과 함께 학림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우리나라 카페의 옛 추억에 잠기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이미지

우리나라 카페 역사에 얽힌 이야기는 다양한 향과 맛을 가진 커피를 닮은 것 같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도 커피에 매료된 고종의 이야기부터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 시절의 문학인들과 예인들이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카페 이야기까지 그렇다. 도심 속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도 좋지만 한 번쯤 옛 정취가 느껴지는 오래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과 함께 우리나라 카페 역사를 음미 해보는 것도 좋은 주말 나들이가 될 듯 하다.

[참고 자료]
"근대 유흥 공간 출현하다", 음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과 커피", 음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인 최초의 다방, 경성에 문을 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커피의 역사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네이버 지식백과
"손탁호텔", 위키백과 사전
"카카듀" 문화원형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계몽魂 불사른 지식인 아지트 ‘다방’, 박영순. 신동아. 2016.12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 377잔", 농림축산식품부 2017.05.25
"천재 시인 이상의 ‘제비 다방’ 위치 확인됐다", 이민주. 이데일리. 2016.11.09
‘추억의 찻집’ 넘어 한국의 ‘르 프로코프’로, 홍석재. 한겨레. 201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