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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편견을 깨다

책 속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커피맛을 찾아서

2017.11.14. 오후 02:46 |카테고리 : News
편견이란 것은 사람들이 정한 관습과 같은 것이다. 나는 관습을 무조건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관습 혹은 나와 맞지 않는 관습은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편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A=B라고 하더라도 ‘왜? 나는 C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된다.
커피에서 산지에 따른 맛만큼 편견이 심한 것이 있을까? 커피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면 콜롬비아나 브라질은 고소하고, 아프리카는 신맛이 강하며, 과테말라는 묵직하고 스모키한 맛이라고 배운다. 그건 책의 이야기다. 콜롬비아에도 화사한 커피가 부지기수고,
아프리카에도 묵직한 맛이 맴도는 커피가 존재한다. 과테말라 역시 마찬가지다. 스모키함 말고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산지에 따라 커피맛을 규정짓는 것은 한국에서 책으로만 공부한 사람의 편견이다. 그래서 나는 산지로 떠난다.
책 속에 갇혀 있지 않은, 커피의 몰랐던 맛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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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COE가 끝나고 과테말라로 넘어갔다. 5월의 중순을 과테말라에서 보내면서 나는 자연의 평화로움을 느꼈다.
과테말라는 지난 해에도 방문했었다. 나는 과테말라를 좋아한다.
콜롬비아만큼 한국에서 인기도 많고, 인지도도 높고, 기본 블렌딩에 부담 없이 사용하기 좋아서다.
‘과테말라’하면 떠오르는 스모키하고 묵직한 맛이 실제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도 직접 살펴보고 싶었다. 지난 해 방문에서는 농장방문이
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매장에서 판매하고, 한국에 유통할 수 있는 생두를 구입하기 위해 바이어로 방문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샘플을 커핑하는 것이 방문의 목표였다. 농장 한 군데만 방문하면 해당 농장과 그 주변 한 두곳을 제외한 다른 농장의 샘플을 맛보기 쉽지 않다. 바이어 자격이 아니면 농장별 샘플을 준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온두라스에서 COE 심사를 진행하면서 이미 많은 커핑을 했지만,
과테말라에서 진행한 커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과테말라는 화산재에 위치한 곳이라 토양이 검다.
아직도 활화산이 많아 아침에 나뭇잎을 살펴보면 이슬과 함께 화산재가 뭍어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한 번은 밥 먹는데 ‘펑’하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저 멀리서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다.
거리가 워낙 먹어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래, 여기 활화산지대지’라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화산토양은 영양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커피든 뭐든 작물이 자라기에 좋다. 약간 과장한다면 다른 지역에서 5년 기른것이 화산지대에서
1년 기른 것과 비슷하게 성장한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그정도로 영양이 풍부해 커피도 맛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테말라커피’하면 커피 초창기 교육서적에서 스모키하고 다크한 것을 강조해 묵직한 맛을 떠올린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더하자면 아직도 펑펑 터지는 활화산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들로 ‘스모키’하다는 이미지가 구축된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 샘플을 커핑해보면 화사한 산미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말그대로 ‘편견’인 것이다.

과테말라에는 5월 13일에 도착했다. 이번에 갔을 때는 수확이 다 끝난 시점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우기였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않았다. 거의 밤에만 오고 아침에는 맑은 하늘을 보여줬다.
과테말라는 아티틀란 호수를 중심으로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방문에서도 호수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는데,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신들이 노니는 곳인 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곳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삶을 함께 한다. 호수를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도착 당일에는 온두라스의 여독을 풀 겸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게다가 일요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잡을 수 없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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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부터 본격적인 과테말라 일정이 시작됐다. 안티구아로 넘어가 그곳의 농장들을 방문했는데, 사전 예약이 필수다.
다른 산지의 농장에서는 간혹 당일 예약을 받는 곳도 있는데, 그곳은 ‘관광’이 주목적일 것이다.
이 근처는 관광보다는 바이어 방문이 빈번한 곳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많은 샘플을 만나볼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이번 방문은 농장 견학보다는 최대한 많은 샘플을 커핑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예약할 때 되도록 많이 준비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지난 방문으로 과테말라 농장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이번엔 좀더 디테일하게 맛평가 해 내가 한국에 들여와
판매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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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카 메디나(Finca Medina)라는 농장에 방문했다. 대량생산을 하는 곳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안티구아 대부분은 대규모 농장이 많은데, 이곳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일부러 대규모 농장으로 지정했다. 소규모 마이크로랏 말고 대규모 생산시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산지에 다녀온 사람들 중 대부분은 현지의 지저분한 환경에 실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시설이 대규모일수록 지저분함은 심하다. 이곳은 굉장히 깨끗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시설이 잘 갖춰져있었다. 농장주가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음이 느껴져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일정 상 그러지 못해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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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농장주 답게 곳곳에서 관리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농장 사이로 마치 남이섬 메타세콰이어길과 같이 긴 길이 있는데, 이 나무의 밑기둥에는 길게 흰색 페인트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줄의 커피나무 크기와 비슷하게 칠해둔 것이다.
수확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인데, 이런 사소한 노력이 좋은 커피 생산의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토양은 검은색이었고, 나무들 사이 중간중간에 나무막대에 커피체리와 비슷한 책을 칠해 놓았는데, 벌레를 잡기 위함이었다.
벌레들은 시야가 또렷하지 않기 때문에 색만 비슷하게 칠해놔도 열매인 줄 알고 달려든다.
벌레는 커피 농장주들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데, 농장주나 농장시스템에 따라 벌레를 쫓거나 잡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곳은 연간 수확량이 굉장히 많은 곳인데, 본인 농장의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소농장 것도 함께 취급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다’, ‘세심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자본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농장엔 전반적으로 꽃냄새가 많이 났다.
나무에서 열린 꽃이 떨어져 길바닥에 흩뿌려져 있기 때문인데, 길게 꽃나무길이 있어 정말 예뻤다.
농장을 다니다보면 접붙이기로 커피종자를 개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은 대부분 자동화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장의 크기가 너무 커 사람이 일일이 하기엔 너무 많은 인원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람이 하는 것은 소분화나 백을 실어 나르는 것 정도. 농장을 떠나기 전, 농장의 에이프런을 모으는 나의 소소한
취미를 이야기했더니 하나 챙겨주었다. 안 주는 농장도 있는데 흔쾌히 제공해주어 수집러로서 기분 좋게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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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6일은 본격적인 샘플커핑을 진행했다. 시티로 돌아와 한 번에 12개씩 커핑했다.
COE 심사때도 이렇게 몰아치기로 안 한 것 같은데.. 전체 60개의 샘플을 커핑했다. COE 나흘 동안 한 양을 하루 만에 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양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바이어로 샘플커핑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지에서 고를 수 있는 전 지역의 샘플을 수거해 내가 가는 날짜에 맞춰 로스팅해준다. 커핑 후 바로 구매해도 되지만, 그 자리에서 반드시 결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그 자리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커핑한 것 중 마음에 드는 몇 종을 한국에 가지고 와 다시 로스팅 후 커핑한 다음
선택하는 것이 좋다. 유통 과정이나 환경 등으로 현지와 한국에서의 맛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구매자가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확실하지 않는 콩을 성급하게 결정 할 필요는 없다. 콩은 많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시즌 막바지라 정말 좋은 것들은 많이 빠진 상태였다. 과테말라에서 구입이 이루어지는 주시기는 4~5월초까지인데, 나는 중순에 방문해 한 템포 놓친 것이다. 원래 과테말라에서도 COE 심사를 하고 싶었는데, 공교롭게 날짜가 온두라스와 겹쳐
포기했었다. 대부분 COE 심사에 참석했던 심사위원들이 선구매를 해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이미 선구매자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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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은 것을 많이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산미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밸런스와 무게감 위주로 고르려고 했다.
‘팔리는’ 콩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의 묵직함은 한국에서 인기 있는 맛이라 아무리 ‘편견이야!’라고 생각되도 구매포인트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한국 소비자들은 브라질, 과테말라, 콜롬비아를 가장 많이 좋아한다. 대기업의 인스턴트용으로도 사용될 정도니
그 인기를 알만하다.

과테말라커피는 화산지역에 고지대에서 자라 밀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지력이 좋기 때문에 퀄리티도 안정적이고, 농장에서 프로세싱에 대해서도 많이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좋은 커피가 많다. 양과 질 모두가 만족되는 몇 안 되는 산지 중 하나다. 과테말라가 향후 몇 년간 계속해서 기대되는 이유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일정 구매량이 보장되면 리스크가 두려워 변화에 소극적인데 이곳의 농장주들은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아래로 커피밸트 내의 다른 나라와의 교류로 변화가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더 많이 팔리기 위해선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테말라 농장주들의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 과테말라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과 인접해 있어 산지투어를 하는 사람들 중 이쪽 주변을 한 번에 다 도는 경우도 있다. 전부 나라가 크지 않아 포인트를 찍고 빠지기에 좋은 곳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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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할 때 과테말라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던 로부스타가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다른 아라비카보다 더 맛있었다. 해당 로부스타를 전량 구매하기로 결정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본래 로부스타는 싸고 품질이 낮은 커피, 아라비카는 비싸고 품질이 높은 커피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로부스타의 질도 많이 좋아졌다. 과테말라처럼 로부스타도 편견이 깨질 필요가 있다. 아라비카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클린하고 밸런스 있는 커피를 선호하는 한국 커피시장에서는 더 어울릴 수도 있다. 단, 일반 소비자 기준이다. 잘 재배된 로부스타는 대중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고소하고, 단맛이 있고 바디감이 좋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설픈 아라비카보다 질 좋은 로부스타가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테말라 일정이 끝났다. 이번 일정은 온두라스-과테말라-콜롬비아로 이어져 바로 콜롬비아로 갈 준비에 분주했는데 예약했던 비행기가 결항되어 급하게 다른 항공사 비행기로 다시 예매하는 등 꽤 복잡한 과정을 겪었다. 콜롬비
아 직항이 없어 파나마에 경유했는데, 파나마 공항은 처음 가봤다. 다음에는 파나마농장도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과테말라에 방문할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안 가본 지역들이 있어 그런 곳들 위주로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샘플커핑이라는 정확한 목표가 있어 과테말라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엔 후에테
낭고와 같은 뒷부분을 갈 계획이다. 다시 농장 위주로 돌아보며 과테말라커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내년의 과테말라는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과테말라에 방문한다면 ‘뽀요 깜뻬로’라는 치킨집에 꼭 방문해보자. 우리나라 치킨과 굉장히 비슷한데, 정말 맛있어서 꼭 먹어봐야 한다. 과테말라 전역에 프랜차이즈처럼 퍼져 있고, 미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판매한다. 맥도날드와 같은 여타 다국적 기업과 비교해도 점유율이 훨씬 높다. 후회하지 않을 테니 꼭!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출처] COFFEE & TEA 17/09 월호
– Report_ Coffee Farm : 과테말라, 편견을 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