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스 핸드드립(Iced Hand Drip)
핸드드립커피를 차갑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의 추출법이다. 산지별로 구별되는 특징적인 맛을 차게 즐길 수 있으며, 시중에서 판매되 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는 근원적으로 차별화되는 커피라 하겠다.
아이스 핸드드립은 추출과정에서부터 얼음과 만나게 된다. 추출이 마무리된 뜨거운 커피가 드리퍼를 벗어나자마자 이를 최단시간 내에 차갑게 식힘과
동시에, 커피가 지니고 있는 향미는 최대한 보존해야 하는 것이 숙제이다.
이는 아이스 핸드드립 기구가 설계되는 핵심 기술이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킬레스건에 비유될 만큼 피할 수 없는 약점이라면 얼음이 녹아
커피를 희석시킨다는 점이며, 그 속도도 제법 빠르다는 것이
모든 아이스 음료 제조의 제약조건이다.
따라서 비교적 많은 양의 커피량을 사용하고, 추출시간을 줄이기 위해 물줄기 조절도 다이나믹하게 진행하는 것이 맛 측면에서 유리하다.
간편하게는 드립서버에 미리 적당량의 얼음을 넣어 두고, 핸드드립식 커피 추출을 통해 바로 추출을 진행한 뒤, 그대로 아이스잔에 부어 서비스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커피기물 전문 제조사에서 출시하고 있는 아이스 핸드드립 전용 기구의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아이스 핸드드립의 원리를 역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최적의 추출을 위한 실무적인 추출법을 확인하도록 하자.
[다양한 형태의 아이스 드립기구]
1) 얼음의 역할
추출을 논하기에 앞서, 아이스 핸드드립에 있어서 얼음의 역할을 정의하고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얼음은 아래의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추출되는 커피의 높은 온도를 낮추는 냉각제
•낮아진 온도를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시켜주는 보냉제
드립서버에 미리 얼음을 넣어두고 커피를 바로 추출한 뒤 간편하게 서비스되는 아이스 핸드드립커피는 위 두 가지 얼음의 역할을 편의상 하나의 얼음이 겸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아이스 핸드드립 전용 기구는 두 가지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여 얼음을 따로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더욱 완성도 높고 전문화된 방식이라 하겠다.
① 추출되는 커피의 높은 온도를 낮추는 냉각제 역할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 추출에 있어서 추출자가 가장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부분은, 추출된 커피의 온도를 최단 시간 내에 떨어뜨려
차갑게 만들어야 하는 동시에, 농도와 향미 손실을 최소화 해야 하는 문제다.
농도와 향미 손실이 커지면 이미 커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온도 강하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를 응용하거나 결합한 형태의 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아이스 드립 기구]
좌측의 하리오 제품은 추출을 마친 커피가 드리퍼를 떠나 바로 아래에 위치한 디퓨저에 일시적으로 모이도록 장치됐다.
이때 디퓨저는 하부 얼음층에 커피가 골고루 떨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커피가 디퓨저를 떠나면 얼음층을 타고 흘러내리며 냉각이 되는 형식으로, 바닥에 다다를 즈음에는 이미 충분히 식혀지도록
아이스 챔버의 높이가 설계되어 있다.
우측의 칼리타社 제품은 얼음에 의해 커피가 냉각되는 아이스 바스켓과 식혀진 커피만 최종적으로 따로 모이게 되는 드립서버로 완전히 구분되어 있는 구조다. 아이스 바스켓은 면밀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커피 온도를 최대한으로 낮춤과 동시에 더 이상 얼음과 만남으로 인해 묽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시간 타이밍에 맞춰 아래의 드립서버로 빠져 내려가도록 장치되어 있다.
이 두 회사의 모델은 이어지는 추출 실무와 함께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② 낮아진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보냉제 역할
여름철이 다가오면 아이스 음료에 사용되는 얼음양에 대한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얼음을 빼면 실제 음료는 매우 적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고려해야할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아이스 음료 두 컵을 구매했는데 한쪽엔 3개의 얼음만이, 다른 한쪽엔 정량인 6개의 얼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무더운 여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10분에 걸쳐 대화하며 구매했던 아이스커피를 각각 마실 경우, 10분이 지난 시점에 어느 음료의
얼음이 더 많이 녹았을까?
[서로 다른 얼음양이 아이스 음료 품질에 미치는 영향]
얼음이 녹는 시간을 살펴보면, ⓐ의 경우 전체 음료의 온도 상승을 단 3개의 얼음이 막아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얼음이 많은 ⓑ보다 더 빨리 녹게 된다. 얼음은 녹으면 물이 되므로 얼음이 빨리 녹을수록 음료도 더 빨리 희석된다. 따라서 음료의 품질 역시 빠르게 나빠지게 된다.
이와 같이, 얼음은 찬 음료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시켜주는 보냉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아이스음료의 품질이 더 오래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의 얼음이 필요하다. 만일, 적정량의 얼음 부피로 인해 기본 음료의 양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면, 더 큰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설득력 있는 대처일 것이다.
아이스 핸드드립커피에서는 일반적으로 농도와 품질 유지를 위해 비교적 많은 30g 가량의 분쇄커피를 1잔 분량으로 사용한다. 또 제조 과정 동안 일일이 추출자의 손으로 만들어야 하며, 세척해야 할 기물 수도 많다. 따라서 올바른 아이스 핸드드립커피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숨어있는 추출법이라 하겠다.
2) 하리오 모델
•추출 순서
아이스 핸드드립에서도 기존의 핸드드립식 추출법의 역학적인 관계가 모두 적용된다. 동시에 추출을 마친 뜨거운 커피가 얼음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익혀나가면 또 다른 차원의 핸드드립커피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래의 추출 순서는 칼리타 모델에서도 기본적으로 적용된다.
1. 여과지 장착
드리퍼는 3~4인 기준의 용량이므로, 여과지도 그 크기에 맞는 것을 사용하면 된다.
2. 원두 계량
추출 과정에서 얼음이 녹아 희석되는 것을 감안하여,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 추출에 사용되는 커피량의 2~3배 정도의 원두를 사용한다면 산지의 맛을 명확히 표현하는데 이롭다. 필자의 경우, 1인 30g, 2인 55g 정도로 계량하고 있다.
3. 분쇄 및 드리퍼에 담기
분쇄도는 중간 혹은 중간보다 조금 굵은 정도를 권한다. 더욱 진한 커피를 원할 경우 다소 가늘게 분쇄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이 경우 물빠짐이 느려져 추출 종료 시간이 길어지며, 그것은 곧 얼음이 더 많이 녹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로 이어질수 있다. 오히려 농도 조절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잡미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4. 아이스 챔버에 얼음 채우기
아이스 챔버의 얼음은 추출 직전에 채우도록 권한다. 얼음부터 채우고 나중에 분쇄커피를 준비하면, 그 시간동안 얼음은 이미 녹기 시작하며, 드립서버에는 물이 고이게 된다.
5. 전체 기물 세팅
추출을 진행하기 위해, 전체 기물을 세로로 세팅 한다.
6. 추출
뜸들이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되, 물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드리퍼 아래로 커피가 가급적 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뜸들이기가 진행되도록 권한다. 뜨거운 액체가 얼음에 닿는 순간부터 얼음은 빠르게 녹기 시작하고, 일반적인 뜸들이기에 소요되는 30초의 시간은 녹기 시작한 얼음이 더 잘 녹도록 촉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다.
추출 시 특히 유의할 점은 농도 관리를 위해 목표 추출량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음이 물이 되면서 추출된 커피와 섞여 추출 결과물의 수위가 얼마나 상승하는지를 예의 주시하여야 한다.
7. 드리퍼, 디퓨저 아이스 챔버 들어내기
목표 추출량이 얻어지는 즉시 드리퍼, 디퓨저, 아이스 챔버를 들어낸다. 추출단계에서 얼음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물길이 편향되는 바람에 추출이 완료된 커피의 온도가 예상보다 다소 높다면, 얼음이 남아있는 아이스 챔버를 들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서버를 흔들어 추가적인 온도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아이스 챔버를 즉시 들어낸다.
8. 아이스 잔에 얼음 채우기
최종 서비스될 아이스 잔에 얼음을 채우는 과정으로, 추출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얼음을 채워 냉장고에 미리 넣어둔다면, 잔마저 차게 식어서 더욱 바람직하다.
9. 서비스
얼음이 든 아이스 잔에 커피를 가득 부어 완성한다.
표면의 거품을 걷어 내면 얼음의 영롱한 모습이 아름답다.
•구모델 VS 신모델
현재 출시되고 있는 우측의 모델은 좌측의 구 제품을 일부 개량한 모델이다. 이 두 가지 모델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아이스 핸드드립커피 추출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종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을 개선하려는 의도와 방향도 가늠할 수 있다. 아이스 핸드드립의 원리가 기물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리오 아이스 드립기구의 모델 비교]
ⓐ 구모델의 아이스 챔버는 좁다. 이 때문에 얼음이 종으로 배열되는 경우가 많아서 뜨거운 커피가 타고 내려도 녹지 않은 부분끼리 서로 떠받치는 현상이 종종 생긴다. 이 경우에는 뚫려진 얼음 길로 채 식지 못한 커피가 자유낙하 하게 되므로, 추출 중에 몸체를 잡고 흔들어 얼음의 위치를 재배열할 필요가 있다.
ⓑ 신모델에서는 아이스 챔버의 폭을 넓혔다. 따라서 얼음은 횡적으로도 나란히 포개져 얼음이 녹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래로 쳐지며 재배열되어 얼음 길이 생기지 않는다.
ⓒ 구모델의 무게중심은 상당히 높다. 커피가 얹히고 물붓기가 시작되면 물의 무게까지 더해져 더욱 불안해지며, 바닥 면적 역시 상대적으로 좁아 드립포트의 주둥이에 부딪혀 넘어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 신모델은 아이스 챔버의 폭을 넓히면서 자연히 드립서버의 지름도 커짐으로써 바닥 면적이 넓어졌다. 따라서 키를 더 낮춰도 되는 상황이 되었고 무게 중심도 내려와 안정적이다.
ⓔ 구모델에는 플라스틱 원반형 간이 디퓨저가 있으나 그 기능 면에서 다소 만족스럽지 못했다. 신모델에서 기물 전체의 키가 낮아지자 ⓕ형태의 본격적인 디퓨저를 도입하였다. 구조를 개선한 결과, 추출 속도도 더 빨라진 반면, 바닥 면적이 넓어지면서 추출된 커피와 얼음이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어야 하는 면적 역시 넓어져 커피가 희석되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것은 약점이다.
1인 분량 300mL, 2인 분량 600mL를 최종 추출량 기준으로 볼 때, 2인 분량에 가까워질수록 거의 모든 얼음은 소진되는 편이며, 더 많은 얼음을 채우려 해도 디퓨저의 하단에 걸려 제한된다.
추출자는 이 부분을 감안하여 추출 속도와 얼음의 소진 정도를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