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PODA COFFEE Cooperative에 속한 ‘내 친구’ 사무엘(Samumel)과의 만남은 4년 전 Q-grader 인증시험에서 시작됐다.
그 전에는 주로 커피를 판매하고 공부하는 학생들만 만났기에 실제 농부와의 만남은 신기했다.
그때 사무엘과 인도네시아에 꼭 가겠다 약속하였고, 그 약속으로 인해 농장을 가게 되었다.
이제 2017년 12월, 인도네시아의 4번째 방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여러 커피산지를 경험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인도네시아 산지가 첫 방문지일 가능성이 높다. 거리상으로 다른 생산국과 다르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네시아는 한국에서 7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산지를 경험하기 위해선 국내선 비행기를 한 번 더 타고 가야 한다. 특히 수마트라섬은 굉장히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항에 내려 농장이 있는 지역까지 차를 타고 반나절의 시간을 더 가야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 지역인 SIDIKARANG에 도착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에 위치한 SIDIKARANG에 ‘PODA COFFEE Cooperative(이하 PODA)’가 있다. 이곳은 2009년에 설립되었으며 약 1,500명의 회원들과 해발고도 1,400m 이상에서 농부들이 모여 커피를 재배하는 곳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좋은 커피를 찾는 것, 실제 농장현지에서의 경험 및 체험과 농부와의 만남, 그리고 교육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커피를 재배하였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경험하는 커피와 인도네시아 산지에서 먹는 커피는 충격적일 만큼 나에게 다른 커피의 인상을 준다.
인도네시아에는 큰 농장들도 있지만 대부분 작은 소작농들이 모여 조합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PODA조합 역시 작게 농사를 하는 소작농들이 모여 더 좋은 커피를 재배하는 것과 수출에 관심이 많은 농장이다.
농장에 가면 확인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커피의 품질과 맛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커피를 어떻게 재배하고 가공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첫째 날은 대부분 이동을 하기에 둘째 날부터 커피 농장을 확인했다. 브라질 혹은 대규모 농장과는 다른 소규모농장들이 모인 곳이라 농장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고 각각의 특징이 있었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농장이어서 농장들은 고도 및 생산을 위한 조건들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생두는 블렌드된 것이 많은데, 대부분 소작농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PODA조합은 최대한 같은 품질의 생두를 재배하기 위해 서로 모여 공부하고 소통해 커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과가 좋았던 커피를 얻으면 농부들끼리 종자들을 나눠 심기도 하고,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질 좋은 스페셜티커피를 재배하려 노력한다.
사실 이 지역의 농부들은 원래 로부스타 커피재배에 힘써왔다. 하지만 사무엘과 같이 커피재배뿐만 아니라 커피교육까지 받은 농부들을 중심으로 아라비카커피 재배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실제 농부들을 만날 때면 항상 우리에 묻는다.
“한국에서는 로부스타와 아라비카 중 무엇을 많이 마시며 선호하고, 얼마의 값으로 판매되는가?”
이곳의 농부들은 실제로 커피가 어떻게, 얼마나 판매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정말로 농사만 짓고 사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에도 사무엘이 “요즘 농부들이 커피나무를 베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커피보다 오렌지가 더 좋은 값에 팔리기 때문에 오렌지나무를 심기 위해 커피나무를 베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몹시 슬펐다. 나는 첫 농장 방문 때 40명 정도의 농부를 만나는 자리에서 “너희들 의 커피는 너무 맛있고, 국제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으니 스페셜티커피를 재배하고 지향하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후로 그들은 사무엘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 스페셜티커피 재배를 위해 힘 쓰고 있다.
비록 내가 그들에게 대단한 것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커피가 계속 이어지고 특히 스페셜티커피 쪽으로 생산 방향을 잡게 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첫 번째 농장은 Dolok tolong 마을에 위치한 Simbolon 농장이다.
우리가 갈 때는 많은 비로 인해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데, 다행히 농부 10명이 오토바이로 우리를 데리러 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마을의 첫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작은 길을 따라가다 큰 나무를 지나니, 한 줄 한 줄 세워진 커피나무와 그 사이에 있는 쉐이드트리(shade tree)들이 나를 환영해 주었다.
대부분 Sigarar utang, Red catura, P88 품종을 사용하고 있었고, 유기농법을 이용했다. 돼지를 키우며 펄핑한 커피 과육과 껍질을 사료로 사용하고, 돼지의 분변을 이용해 커피에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비료를 소량 사용하기도 하지만, 세미 유기농법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약 10명의 농부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며 커피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다. 맨손으로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커피가 과연 우리를 배부르게 해줄 수 있는 것인가?’다. 우리와 같은 소비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맛있는 커피’지만, 이들과 같이 커피를 팔아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은 ‘이것이 돈이 되는가’다. 아쉽게도 이들은 아직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정확한 방법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전 세계에 수많은 곳이 스페셜티커피를 지향하지만, 실제 농부들에게는 한 해 동안 커피를 얼마나 재배하느냐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의 값어치를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의 예로 예전에 들렸던 농장은 대규모 커피업체에게 공급하는 농장이었다. 업체에서 커피에 대한 퀄리티보다는 많은 물량을 원했기 때문에 커피의 품질보다는 수확량을 늘리는 데에 힘써왔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적당한 가격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그들에게 스페셜티커피를 지향하며 굿 퀄리티, 개성이 있는 커피를 재배한다면 보다 좋은 결과를 예상하며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Good things, Good coffee, Good people’이란 슬로건으로 카페를 하는 나에게는 좋은 커피를 지향하며 좋은 생각을 가진다면 좋은 사람끼리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이 농장과도 거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두 번째 농장은 Sinaga 농장인데 시디카랑지역을 오면 항상 들리는 곳이고 4번째 방문이었다.
이곳에서는 옛날 방식의 로스팅과 직접 나무를 재배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하면 빼놓을 수 없는 KOPILUWAK을 자연산으로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루왁커피는 대중에게 가장 비싼 커피이자 어쩌면 그 값에 비해 좋지 않거나 맛이 없는 커피로도 항상 말이 많이 나오는 커피다. 루왁커피는 많은 이들이 선호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스페셜티커피가 아니라 나 역시 루왁커피의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사람 중 하나다.
실제 루왁커피를 생산하는 곳 대부분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품질이 좋지 않은 커피를 먹이는 행위들로 항상 이슈가 많고, 나 역시 루왁을 먹고 좋은 향미를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Sinaga 농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루왁커피를 알고 있냐? 한 번 보여줄까?”라는 질문에 한 번 경험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해 Sinaga 농장의 루왁을 만났다.
이곳은 루왁커피를 위해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자연산 루왁커피, 말 그대로 농장 주변에 사는 야생의 사향고양이가 스페셜티를 지향하는 좋은 생두를 먹고 항상 같은 나무에서 배설하는 루왁커피를 모아서 조금씩 만들고 있다. 설명을 들으니 빨리 커핑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 이곳 루왁을 커핑한 후 루왁커피에 대한 인상이 180° 바뀔 정도로. 기존의 Sinaga 농장의 맛인 Fruity하고, Dark하며 인도네시아 특징인 Earthy한 인상과 더불어 루왁 특유의 기분 좋은 발효취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인상의 커피를 경험했지만 루왁커피를 거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루왁커피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경험한 것에 의의를 둔다. 가끔 다른 열매를 먹은 씨앗을 찾기도 하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다음날 흥미로운 재배법을 발견했다. 커피나무 사이사이에 대부분 쉐이드트리가 있는데 그 나무를 쉐이딩용이 아닌, 커피에 과일의 향미를 더하기 위하여 오렌지나무를 심었다. 오렌지나무가 커피의 향미에 영향을 주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사실이 없지만, 커핑해보니 Citrus한 향미가 더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품종과 프로세싱의 방법이었지만 다른 향미를 더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만, 벌레들이 많아서 디펙트가 많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인도네시아 농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Giling Basah 프로세싱을 보는 것이다. 대부분 책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다양한 Giling Basah가 존재한다. 그 이유는 농부들 또는 농장마다 프로세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인데, 인도네시아 농부들과 가공업체들은 그들의 전통방식을 통틀어 Giling Basah라고 이야기한다.
농장마다 조금씩 프로세싱이 다르다 보니, Giling Basah에 대한 정확한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고, 그들 자신도 이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지 않다. 지금까지 정리된 특징은 농부가 직접 수확한 커피체리들을 직접 펄핑기로 과피와 과육을 제거한 뒤, 하루쯤 말렸다가 점액질을 물에 씻거나 그대로를 가공업체 또는 수집가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치먼트 상태로 말렸다가 수분이 40% 정도가 되었을 때 탈곡한다. 대개 파치먼트 상태로 보관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유일하게 그린빈상태로 보관한다.
PODA 조합은 워시드(Washed), 내추럴(Natural), 허니(Honey), 루왁(Luwak)의 프로세싱이 있는데, 이번에 재미난 프로세싱 방법을 도전했다고 했다. 이른바 Inside 프로세싱. 비닐하우스에서 말리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고 바람이 통하게 하여 햇빛을 직접보지 않게 건물 안에서 말리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맛이 좋아서 계속해서 건물을 지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프로세싱을 개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농장에서 농부를 만나 그들의 삶을 나누고 실제 커피를 재배하는 것과 판매하는 것들을 보며 더욱이 커피를 하는 사람으로서 커피에 대한 애정을 많이 느끼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커피를 공부하면서 나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과일의 향미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여행 중 과일에 최대한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정말로 풍요로운 곳이다. 이곳 과일의 다양성은 나에게 좋은 선물과도 같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머리로 외워버리는 과일과 상상을 깨워주는 과일, 다른 표현들로 이야기하게 되는 과일이 커피를 하는 나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는 ‘살락’이라는 과일의 경험이 흥미로웠다. 매번 두리안과 람부탄, 파인애플 등의 열대과일을 농장을 통해 직접 맛보는 것이 행복한 경험 중 하나이다.
아마도 수많은 이들이 커피농장에 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거래를 위해 가지 않는 한 농장 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단순 방문 및 관람 프로그램이 있는 곳이 아닌 이상, 외부인의 출입은 농부들을 귀찮게 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너무나도 좋은 것 같다. 우리가 가서 단순히 관람의 의미만 갖지 말고, 우리도 그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매년 2번씩 인도네시아 커피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커피농장 특히 인도네시아커피에 관심 많고 경험하고 싶은 이들이 많이 모이길 바란다.
‘공감여행-인도네시아 커피 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서로를 공감하고 농부와 소비자 모두가 커피 하나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농부에게는 ‘동기부여’가, 우리에게는 진짜 커피를 찾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출처]
COFFEE & TEA 18/02 월호
– 인도네시아, 스페셜티 커피의 길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