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윤오영 작가의 수필집 「방망이 깎던 노인」을 보면 차 시간이 다 되어 재촉하는 주인공에게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던진 말이다. 노인의 말처럼 밥 짓기 과정 중 ‘뜸 들이기’는 생략할 수 없는 필수적인 단계이다. 뜸 들이지 않은 밥은 설익어 좋은 맛을 내기가 힘들다. 이처럼 모든 일이 서두른다고 해서 성사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섣불리 행동한다면 일을 그르치기 일쑤. 가끔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자세가 큰 도움이 된다. 밥 짓기뿐만 아니라 중요한 대화를 시작하기 전의 머뭇거림, 중요한 일을 마치기 전 마지막 심호흡처럼 우리에게 ‘뜸 들이기’는 꽤나 익숙한 일이자 필요한 과정이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여유’와 ‘기다림’이 특별히 중요시될 때가 있다. 바로, 커피가 주는 풍부한 향미와 낭만적인 멋을 즐길 수 있는 핸드드립의 시간이다. 단순히 커피를 여유롭게 즐긴다는 뜻이 아니라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드립 커피를 내리는 과정 전체에서 ‘기다림’은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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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필터에 그라인딩된 커피 가루를 담은 모습
기다림은 언제까지나 멈춰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의 성공을 위해 적절한 ‘때’를 노리는 것을 뜻하기도 하다. 특히 핸드드립 과정에서 뜸 들이기와 추출 과정은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갖추고 때를 노리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지난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핸드드립 커피의 무한한 매력 콘텐츠에서 기초적인 물 붓기 방법과 드립포트 선택법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해당 콘텐츠에서 핸드드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면, 이번 콘텐츠에서 소개하는 알맞은 뜸 들이기 방법과 추출 방법으로 집에서도 전문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처럼 맛있는 커피를 즐겨보도록 하자.
뜸 들이기, 왜 필요한 걸까?
핸드드립 커피 추출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뜸이다. 뜸을 잘 들여야 커피 성분이 원활하게 추출되어 커피의 맛과 향미를 완연하게 느낄 수 있다. 야심 차게 홈 카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커피 입문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첫 번째 과정이 이 ‘뜸 들이기’기도 하다. 커피가 팽창하기 전이기도 하고 드립 포트에 물이 많아 기울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커피에 처음 물을 부어 뜸을 들이게 되면 커피 입자들이 부풀어 오르고 거품이 생긴다. 이는 커피 안에 함유되어 있던 탄산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생두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생두는 수많은 구멍의 다공질(多孔質)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열을 받으면 작은 구멍들이 커지게 된다. 그 속에 이산화탄소(CO2)와 향 성분이 모여 있다가 시간이 지나 숙성이 되면, 이산화탄소와 향 성분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산소와 수분이 침투하는 것이다.
뜸을 들이기 위한 물이 가루 전체에 고르게 퍼지게 되면 커피 입자가 물을 흡수해 커피의 수용성 성분이 물에 충분히 녹게 되어 추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만일 이런 뜸을 들이는 과정이 없다면, 수용성 성분이 물에 용해될 시간이 없어져 어딘가 맛이 빠진 듯한, 싱거운 커피가 추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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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들이기 시 커피 가루에서 탄산 가스가 빠져 나가는 모습
많은 노하우가 필요한 뜸 주입 방법
우선 뜸을 들이기 전 린싱(Rinsing)이 필요한데, 린싱은 종이필터가 끼워진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부어 드리퍼와 서버를 씻어내는 작업이다. 린싱의 필요 유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린싱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로는 필터와 드립퍼의 밀착, 종이의 펄프 냄새를 제거, 드리퍼와 서버의 온도를 올려 커피를 추출하기 좋게 만들며, 뜸 들일 시 물이 건조한 종이필터에 급작스럽게 빨려 들어가는 현상 방지 등이 있다.
뜸 들이는 방법 중 가장 일반적인 종이 필터에 나선형 드립법을 기준으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나선형은 중앙에서 시작해 점차 바깥쪽으로 원을 점차 키운다는 느낌으로 물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뜸을 들일 때 물의 양은 원두 양의 1~1.5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커피 한 잔에 보통 원두 10g 정도를 사용하면 되므로, 약 10ml 정도의 물을 주입하여 뜸을 드리면 되는 것이다. 커피 가루를 고루 적셔가며 붓는데, 신선한 커피가 뜨거운 물에 젖으면서 부풀어 오른다. 이때 원두의 로스팅 날짜가 가까울수록, 로스팅 단계가 높을수록 탄산가스가 많이 배출된다. 주입되는 물은 드립 포트에서 수직으로 떨어지게 하며 물줄기를 가늘고 촘촘하게 하여 커피 전체에 빠짐없이 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한 곳에 물줄기가 머물게 되면 의도하지 않은 추출이 이루어지게 되고 듬성듬성하게 물이 부어질 경우 커피 맛이 제대로 뽑히지 않게 되지 않을 수 있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다. 뜸을 줄 때 필터에 직접 물이 닿게 되면 드리퍼를 타고 물이 서버로 흘러 들어가 커피가 싱거워지므로 가장 자리 부분은 빠르고 은근하게 적셔주는 요령이 필요하다.
또한, 뜸 주입 시 커피의 상태에 따라 그에 맞는 양을 주입해야 하며 만일 물을 과도하게 주거나 너무 적게 주면 커피가 제대로 추출되지 않는다. 아래 표를 참고해 물 주입에 유의하도록 하자.
주입량 | 설명 | 이미지 |
적정 주입 |
– 위에서부터 아래로 균일하게 순차적으로 커피가 적셔 물이 적정하게 주입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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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 주입 |
– 뜸을 줄 때 너무 많은 물을 주입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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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 주입 |
– 뜸을 줄 때 물을 너무 적게 주입한 경우 |
보기보다 어려운 커피 추출, '이것'만 기억하자
바리스타룰스가 소개한 ‘하리오 드리퍼로 핸드드립하기’ 영상 장면
뜸을 주고 난 후 바로 이어지는 과정이 추출이다. 20~30초 정도가 지나면 부풀기가 멎는데 뜸 들이는 과정이 끝났다는 뜻이다. 추출할 때도 뜸과 마찬가지로 물이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중심부에만 치중되지 않도록 골고루 넓게 추출해야 하며 페이퍼에 물이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떤 커피를 뽑을 것인가에 따라 또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뜸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나선형 추출 방법으로 추출 할 수 있다.
추출 시에는 뜸보다 굵은 물줄기로 중심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물을 주입한다. 이때 드리퍼의 중심 부분은 커피의 양이 바깥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 천천히 주입하고 바깥은 반대로 조금 빨리 물을 주입해 주어야 하며 동일한 물줄기와 속도를 유지해야 올바른 추출이 이루어진다. 처음 핸드드립을 시작하면 포트로 드리퍼를 건드리는 실수를 많이 해 너무 높은 위치에서 물을 주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낙차가 높은 상태에서 물을 부으면 물의 운동성이 커지면서 물줄기가 불규칙해져 커피 성분이 과도하게 추출되어 쓴 맛이 강해지고 향미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초보자라면 나선형 추출 법을 사용할 경우 커피의 추출속도가 빠른 기구인 고노, 하리오, 융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침지식, 침지식 스타일로 추출의 속도가 빨라도 커피 맛이 가벼워지지 않기 때문에 멜리타, 칼리타 기구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추출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커피 추출은 멜리타를 이용한 드립을 제외하고는 한 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2회 이상 추출하게 된다. 커피 추출의 성패는 뜸과 1차 추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대부분의 커피 성분이 초반부에 추출되기 때문이다. 추출 횟수는 커피양과 추출하고자 하는 양에 따라 4차 이상이 될 수도 있고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 동일한 양을 추출한다고 생각하면 추출 횟수가 적을수록 보다 마일드한 커피가 추출된다. 아래 설명과 이미지를 확인한 후 추출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도록 하자.
A. 1차 추출
© baristarules.maeil.com
팽창이 멈추는 시점에 1차 추출을 시작한다.
뜸을 주게 되면 커피가 부풀어 오르는데 그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어느 순간 팽창이 멈추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때 1차 추출을 시작하면 된다. 원두마다 그리고 바리스타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1차 추출 시 물의 양은 전체 주입량의 40% 정도를 주입하는 것을 권장한다. 커피가 팽창을 멈추게 되면 다시 수축이 일어난다. 수축이 시작되면 물을 부어주어도 잘 주입되지 않으므로 팽창이 멈추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주의하자.
B. 2차 추출 이후
© baristarules.maeil.com
커피층이 아래로 내려갈 때 다음 추출을 시작한다.
1차 추출 시 커피가 팽창하면서 추출이 이루어지는데 커피 층 안에 있던 물이 점점 없어지면서 드립 서버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차츰 가늘어진다. 서버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방울로 바뀌기 시작하고 팽창했던 커피층이 아래로 내려가면 다음 추출을 시작하면 된다. 따라서 추출이 모두 마무리될 때까지 커피에 눈을 뗄 시간 없이 집중하여 진행해야 한다. 이때 2차 추출 이후 물의 양은 전체 주입량의 60% 정도를 나누어 주입하며 추출을 마무리 지으면 된다.
이번 콘텐츠에서 소개한 뜸 들이기와 추출 방법은 핸드드립의 과정 중 하나로 커피의 로스팅 포인트, 추출 기구에 따라서 그 방법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뜸 들이기와 추출을 위해서는 사용하는 원두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시도, 그리고 많은 연습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최적의 추출 타이밍을 찾는 노련함을 갖추고 드립포트에서 떨어지는 물 줄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핸드드립 커피의 향미와 깊은 풍미가 당신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권대옥의 핸드드립 커피, 권대옥, 이오디자인, 2012.
커피인사이드, 유대준, Haemil,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