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master, 名醫)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나 처지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장인이라 함은 설령 장비가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더라도 그 장비를 탓하지 않고 잘 해결해 나간다. 그런데 이런 장인들이 사용하는 연장까지 좋다면 어떨까? 더욱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도 마찬가지.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계의 사용이 필수적인 에스프레소(espresso)는 특히 그렇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좋은 에스프레소 한 ‘샷’이 탄생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연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에스프레소(espresso)의 진원지인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곧 에스프레소를 뜻한다. 영어로는 ‘익스프레스(express)’라 하며 ‘특급’ 혹은 ‘매우 빠른’이라는 뜻인데,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전용 커피추출 기계를 사용해서 빠른 시간 내 추출한 커피를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머신은 약 100년 전 처음 발명되었다. 그 당시에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데 가장 적합한 9기압의 압력을 가해, 섭씨 약 90도의 온수로 추출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여기에 7g의 매우 가는 분쇄 가루에서 20~30초 만에 추출된 25~30cc 농축감이 있는 커피를 에스프레소라고 칭했다. 그렇게 발명된 에스프레소 머신은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바(bar)에서 처음 사용되고 그 후 프랑스와 스페인 등지에 보급되었다. 이러한 바 문화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에스프레소도 각 나라의 문화나 기호를 반영하면서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좋은 에스프레소의 기준, 크레마/unsplash.com
그렇다면 좋은 에스프레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커피 자체의 본질적인 향미를 표현하거나, 초콜릿 향이나 가벼운 산미 등을 느낄 수 있어야 좋은 에스프레소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고품질의 원두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좋은 에스프레소의 표면에는 2~4mm 정도 크레마(crema)라고 하는 옅은 갈색 층이 생긴다. 이는 커피의 오일 성분과 끓인 물이 유화된 상태로, 에스프레소의 향을 지속시켜 맛을 부드럽게 해주며 입자가 고운 거품이 오래 지속될수록 좋은 에스프레소다. 따라서 머신을 사용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크레마가 적당히 잘 나오는 추출 속도를 여러 차례 시험해보며 파악해두는 것이 좋다. 이렇듯 에스프레소의 추출 상태를 좌우하는 머신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에스프레소 머신은 190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가 ‘증기 가압식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특허를 취득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1903년 이탈리아의 데지데리오 파보니(Desiderio Pavoni)가 베제라의 특허 사용권을 얻어 1905년부터 ‘라 파보니’라는 상표로 에스프레소 머신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테레시오 아르두이노(Teresio Arduino)가 파보니와 유사한 유형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제작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 머신은 지금의 많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표본이 되었다. 이후 1906년 밀라노 박람회에서 베제라 머신이 소개되었고, 베제라 부스에 ‘Café Espresso’라고 적혀 있어 이 기계로 추출한 커피를 에스프레소라고 칭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머신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레버형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더한 ‘수동머신’
바리스타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수동 머신/shutterstock.com
에스프레소 머신의 시작에는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 중인 수동 머신이 있다. 이 머신의 유래는 1938년 이탈리아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 시기에 밀라노의 크레모네시(Signore Cremonesi)와 아킬레 가찌아(Achille Gaggia)가 수동 머신의 모태인 피스톤 방식의 기계를 고안해냈다. 크레모네시는 레버를 수평으로 돌리면 피스톤이 회전하면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이용해 뜨거운 물을 커피에 밀어내는 형태로 머신을 개발하였다. 그 해 가찌아 또한 피스톤방식을 개발하였는데 크레모네시가 세상을 떠난 후 특허를 입수하여 1948년 가찌아사를 설립하고 용수철식 피스톤 머신을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수동 머신의 작동 방식은 바리스타가 직접 레버를 올리거나 내려 피스톤을 들어 올려 뜨거운 물을 유입시키고 다시 레버를 반대로 움직여 피스톤이 내려가면서 뜨거운 물을 밀어내어 커피를 추출하는 식이다. 이 머신의 개발 과정에서 높은 압력이 커피에 가해지면서 예상치 못하게 탄생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에스프레소의 시그니처인 크레마다. 수동 머신이 확산되면서 에스프레소의 좋은 향미와 높은 품질의 크레마는 실력있는 바리스타의 척도가 되었지만 샷 한 잔을 내리기 위해 매 추출마다 레버를 올리고 내리는 일은 번거롭고 빠르게 여러 잔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여겨졌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레버를 움직여야 하는 수동방식은 손님들에게는 화려해 보일지라도 일정한 커피 향미를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에스프레소 기계의 확산에 비해 실력 있는 바리스타의 수가 그에 미치지 못하자 숙련된 바리스타 없이도 더 많은 손님들에게 안정된 품질의 에스프레소를 제공할 수 있는 머신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런 상황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더욱 자동화시키고 고속화 시켜야 한다는 인식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전동 펌프형 에스프레소 머신 Faema E61/feama.com
그로 인해 1950년대 이후 피스톤 방식을 개량한 머신들이 등장하며 전동식 머신의 개발을 앞당겼다. 훼마사(Faema)에서는 1961년 최초로 전동 펌프를 사용한 에스프레소 머신, Faema E61을 출시했다. 이 머신의 전동펌프는 약 9기압의 높은 압력을 일정하게 생성해냈고 수직적이었던 구조를 수평적으로 바꾸어 보다 작은 크기로 머신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전동식 펌프의 개발로 에스프레소 머신의 혁신이 시작된 것이다.
동일한 추출 조건에서 일정한 향미를 내는 ‘반자동 머신’
레버 대신 다양한 버튼으로 추출을 조정하는 반자동 머신/shutterstock.com
전동 펌프가 실용화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의 전자화에 따른 자동화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전까지 레버로 추출의 시작과 종료를 정했다면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 바뀌었고, 수동 머신에 비해 바리스타의 실력에 구애받지 않고 균일한 향미의 에스프레소를 추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며 편리성을 개선한 반자동 머신은 매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머신이다. 그라인더와 머신이 분리되어 있어 원두에 직접적으로 열이 전해지지 않고 수동식에 비해 사람의 개입이 덜 하기 때문에 향미가 다소 일정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원두의 분쇄도, 투입량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만큼 이러한 변수를 조정하는 부분에서는 전문 바리스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는 압력, 온도 등 사용자가 세부조정을 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 되어 더 다양한 맛과 향을 내는 에스프레소를 구현해낼 수 있다.
바리스타룰스 역시 올해 직접 경험하고 온 ‘2018 Specialty Coffee Expo‘과 ‘2018 서울커피엑스포’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비롯한 브루잉 커피 머신 등의 자동화와 디지털화가 개발 트렌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교하고 세밀한 추출을 설정할 수 있어 바리스타의 수고를 덜고 매장에서 손님과의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머신들, 전문 바리스타가 없더라도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레시피를 내장한 머신들 등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커피 머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외 자세한 머신 이야기와 최근 커피업계의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지난 콘텐츠, 시애틀에서 열린 ‘2018 글로벌 스페셜티 커피엑스포’ 생생 리포트와 2018 서울커피엑스포에서 만나본 커피 트렌드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수동 | 반자동 | 자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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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 레버식 | 펌프식 | 펌프식 |
그라인더 | 필요 | 필요 | 내장 |
장점 |
▪ 섬세한 맛 표현 가능 ▪ 시각적인 효과 |
▪ 편리한 메모리 기능 ▪ 원하는 맛을 내기 용이 |
▪ 버튼 하나로 손쉬운 메뉴 제조 |
단점 |
▪ 반자동에 비해 느린 편 ▪ 일정한 맛의 추출 어려움 ▪ 숙련된 바리스타 필요 |
▪ 넓은 설치 공간 필요 ▪ 바리스타의 전문성 필요 |
▪ 별도 세팅이 번거로움 ▪ 맛의 품질 유지가 어려움 |
홈카페가 인기를 얻으면서 집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핸드드립 기구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는데 최근에는 상업용이라고 여겨지던 에스프레소 머신마저 집안에 들여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정용으로 개량된 에스프레소 머신은 업소용만큼 성능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괜찮은 품질의 에스프레소를 직접 만들어서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점점 그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커피 애호가들의 품질이 좋은 커피에 대한 갈증은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이번 콘텐츠에서 설명한 머신의 발전 또한 마찬가지로 에스프레소를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만들었고 좋은 향미와 풍부한 크레마를 가진 에스프레소를 집에서 편하게 내려 마실 수 있게까지 이끌었던 것. 허나 분명한 것은 좋은 에스프레소의 탄생이 단순히 머신의 발전만으로 이루어졌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오늘은 가장 좋아하는 카페, 혹은 바리스타가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작은 에스프레소 한 잔에 담을 ‘최고의 샷’을 위해 커피나무가 무성한 커피 농장에서 시작해 고소한 커피향이 가득한 로스터리,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바리스타까지 수많은 과정 속에서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노력들을 되새기며 말이다.
[참고 자료]
당신이 커피에 대하여 알고 싶은 모든 것들, 루소 트레이닝랩, 위즈덤스타일, 2015.
커피 교과서, 호리구치 토시히데, 벨라루나,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