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룰스가 지난 포틀랜드 커피여행에서 다녀온 ‘파이브 포인츠 커피 로스터스(Five Points Coffee Roasters, 이하 파이브 포인츠)’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는가? 파이브 포인츠는 거래하는 농장에 자체적으로 디카페인 머신을 구비해 설치해놓고 생두를 공급해오는 만큼 디카페인 커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 주민들뿐만 아니라 포틀랜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또한 파이브 포인츠가 직접 카페인을 제거하고 로스팅한 디카페인 원두를 신뢰하고 구매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 파이브 포인츠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 킨포크(Kinfolk) 감성 따라 떠나는 포틀랜드 카페투어
커피의 쓴맛의 원천이자 존재의 근원이 된 ‘카페인(Caffeine)’.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인을 제거한 디카페인 커피를 많은 소비자들이 찾고 있고, 파이브 포인츠처럼 더 나은 품질의 디카페인 커피를 공급하기 위해 생산자들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카페인의 숨길 수 없는 매력과 디카페인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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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포인츠 커피로스터스의 디카페인 원두
카페인의 ‘중독적인’ 매력
니코틴과 알코올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약물이자 북미 인구의 90% 매일 섭취하는 이것.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곤 하는 커피 속 ‘카페인(Caffeine)’이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룽게(Friedrich Runge)가 최초로 커피에서 카페인을 추출, 커피 안에 있는 화학 물질(coffee + ine)의 뜻을 가진 Caffein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카페인이란 쓴맛을 내는 흰색의 결정체로 메질잔틴(methylzanthine)에 속하는 식물체 알칼로이드이며 주로 커피, 차, 카카오, 과라나 열매의 잎과 씨앗 등에 존재한다. 카페인은 원래 식물이 해충을 쫓기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내는 화학 물질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지역의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필수 전략인 셈. 우리가 느끼는 커피의 쓴맛 중 약 10% 가량은 카페인의 영향을 받을 만큼 순수한 카페인은 강한 쓴맛을 낸다고 한다.
이처럼 해충들도 피하는 카페인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찾는 모습이 참 흥미롭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커피 한 잔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밤에 잠을 청하지 못하는 증상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마다 카페인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카페인의 효용성과 독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카페인은 우리 몸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뇌가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만든다. 카페인 섭취 후 각성효과로 일시적으로 졸음이 억제되기도 하고, 집중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장시간 회의 때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커피를 거부할 수 없는 당신을 위한 ‘디카페인 커피’
하지만 카페인 섭취는 심박수를 증가시켜 혈압을 상승시키기기도 한다. 그래서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의 경우, 가슴 두근거림 또는 손 떨림 증상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커피를 피하거나 하루에 마시는 커피량을 조절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시지 않으면 그만인 기호 식품 커피, 왜 이렇게 조절까지 해가며 마시게 되는 것일까?
커피를 섭취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앞서 이야기한 카페인의 긍정적인 효과를 누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커피를 섭취하는 이들도 있지만,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느끼고자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상당수다.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면서 카페인의 섭취는 줄이고 싶은 이들에게 아주 적절한 커피가 있다. 바로 ‘디카페인 커피(decaffeinated coffee)’다.
디카페인 커피의 제조 목적은 카페인 없이도 커피 특유의 아로마와 맛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디카페인 커피는 오늘날 원두 커피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커피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EU 기준으로 99% 이상 카페인이 제거되어야 디카페인 커피(Decaffeinated Coffee)가 된다. 그렇다면 커피의 아로마는 유지하면서 카페인 성분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 로셀리우스 방식(Roselius Process)
Friedrich Ferdinand Runge/wikipedia.com
커피 생두에서 최초로 카페인을 제거한 사람은 1819년 앞서 이야기한 룽게(Friedrich Ferdinand Runge)로 알려져 있지만, 상업적인 카페인 제거기술이 개발된 것은 1900년대 초반이다. 1902년 독일의 로셀리우스(Ludiwg Roselius)가 처음 상업적으로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식을 개발해냈고, 1906년 특허를 받았다.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로셀리우스 방식(Roselius Process)’은 증기를 쐰 생두에 산 또는 염기를 이용하여 카페인을 제거하는데 주로 벤젠(Benzene)을 사용하였다. 이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는 카페산카(Café Sanka)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판매되기 시작하였으나 벤젠의 유해성이 우려되어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2) 스위스 워터 방식(Swiss Water Process)
대표적인 디카페인 추출법으로 알려진 ‘스위스 워터 방식(Swiss Water Process)’은 Swiss Water Decaffeinated Coffee Company에서 1930년대 초에 개발한 방식으로 커피의 향 손실을 줄이고 카페인만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방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생두추출물(GCE: Green Coffee Extract)이라고 하는 용액이 필요하다. 먼저 생두를 뜨거운 물에 담가 카페인과 커피 내 많은 수용성 물질이 녹아 나오도록 한다. 그 후 용액을 활성탄소(Carbon filter)에 걸러내면 카페인만 제거되고 다른 수용성 성분들은 통과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액이 바로 생두 추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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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워터 방식 원리
카페인을 제거하고자 생두를 생두추출물에 담가 두면 카페인만 우러나게 된다. 용액에는 카페인을 제외한 수용성 성분들이 이미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어 생두의 수용성 성분들은 추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생두추출물을 활성탄소를 이용하여 걸러내고 다시 생두를 담그는 작업을 반복하여 카페인을 99% 이상 제거한다. 그 후 생두를 건조시키면 대부분의 향미는 유지하고 카페인만 제거된 커피가 된다.
3) 이산화탄소 방식(CO2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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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계 유체 추출 방식 원리
이 방식은 '초임계 유체 추출(Supercritical fluid extraction)'이라고도 하며 고압의 이산화탄소를 사용하여 카페인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우선 생두에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수증기를 쐬어주면 생두가 부풀고 표면적이 넓어져 카페인 제거가 용이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친 생두를 약 70기압 이상의 고압과 300’C 이상의 고온상태의 초임계 이산화탄소에 담근다. 액체화된 이산화탄소에 생두를 담그면 이산화탄소가 생두에 침투하여 97~99%까지 카페인을 용해, 분리한다.
초임계 방식이 스위스 워터 방식에 비해 커피 향미가 좀 더 좋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 글로벌 프렌차이즈 카페 스타벅스에서도 2016년 이전에는 스위스 워터 디카페인 원두를 취급하다가 이후 초임계 유체 추출을 이용한 디카페인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추출 방식은 해로운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으며 액체와 기체의 특성을 고루 갖춘 초임계 상태의 유체를 사용하므로 카페인을 쉽게 녹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 방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4) 유기 용매를 통한 직접방식(Direct Process) 및 간접방식(Indirect Process) 추출
유기 용매를 통한 ‘직접방식(Direct Process)’ 추출은 먼저 생두에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증기를 쐬어 준다. 이 과정을 거친 커피콩은 부풀어 오르고 표면적이 넓어져 카페인 제거가 용이하게 된다. 다음 단계는 다시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용매의 끓는 점에 가까운 온도에서 약 10시간 동안 에틸아세테이트(ethyl acetate)와 메틸렌클로라이드(methylene chloride)와 같은 용매를 이용해 생두를 씻어내어 카페인을 제거한다. 이후 씻어낸 용매에 다시 10시간 동안 수증기를 쬐어 잔류하는 용매를 제거하는데, 미량의 용매 성분이 커피에 잔류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잔류하는 성분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건강에는 영향을 주지 않아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간접방식(Indirect Process)’은 직접방식과 유사하나 용매와 생두가 직접 접촉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먼저 뜨거운 물에 몇 시간 동안 담가 성분들을 추출한 후 생두는 빼내고 남은 물에 용매를 넣어 카페인을 제거한다. 카페인이 제거된 물에 같은 방식으로 다른 생두를 넣어 성분을 우려내고 다시 빼낸 후 용매를 첨가하여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여러 번의 작업을 통하면 액체 내 성분들이 포화상태가 되어 평형이 이루어지므로 더 이상 생두를 넣어도 맛이나 향 성분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향미의 손실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카페인은 제거하되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커피 애호가들의 갈망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까지 디카페인 공정상 발생하는 높은 생산 비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디카페인 공정이 개발되고 있다. 안전과 환경에 대한 영향 그리고 비용과 향 등의 문제를 모두 고려해 디카페인 커피의 개발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발전 중이다.
오늘 하루, 본인이 생각한 ‘하루 커피 소비량’의 임계치에 다다라 아쉬움이 남는다면? 걱정 말고 디카페인 커피 한 잔으로 커피 향을 한껏 머금어보자. 디카페인 커피가 선사하는 커피 향에 취해 오히려 오늘 밤 숙면을 취할지도 모르니까.
[참고자료]
커피인사이드, 유대준, 해밀, 2009.
당신이 커피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 루소 트레이닝랩, 위즈덤 스타일,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