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김‘, ‘고창 수박’, ‘제주 천혜향’
마트에서 으레 볼 수 있는 말이다. 이와 같이 식재료를 설명할 때 대개 원산지를 강조하거나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산지에서 난 산물이 다른 지역의 것보다 그 맛이 우수하거나, 혹은 그 특산물이 다른 지역의 산물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이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마다의 환경적 특색에서 비롯되는데, 완도 김과 같이 생산물이 재배되기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춘 경우도 있고, 제주 천혜향과 같이 생산물이 재배되면서 그 환경에 맞게 변이된 경우도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 역시 생산되는 커피벨트 지역에 따라 그 맛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며, 재배되는 환경에 따라 새로운 품종이 탄생하기도 한다. ‘티피카(Typica)’와 같이 원종에 가까운 재배종으로 꼽히는 ‘부르봉(Bourbon)’이 그 대표적인 품종이다. 영어식으로 발음하여 ‘버번’이라고도 불리는 이 품종은 티피카 종과 마찬가지로 에티오피아가 그 원산지다. 그러나 부르봉 섬(Reunion, 현 레위니옹 섬)이 지닌 독특한 환경과 만나면서 부르봉이라는 새로운 품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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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봉 섬(현 레위니옹 섬)
17세기 절대 왕정으로 꼽히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이름을 따 부르봉 섬이라 불리던 이곳에서 태어나 뛰어난 맛과 품질로 ‘왕의 커피(CAFÉ DU ROY)’라고도 불린 부르봉 종. 과연 이 커피의 매력은 무엇이었을지 바리스타룰스와 함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서 살펴보자.
커피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 ‘부르봉(Bourbon)’
약 1천년 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에티오피아 부족민들의 에너지원이나 귀한 약으로 사용되던 커피는 아라비아 예멘을 거친 후, 17세기 초에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유럽인들이 앞다투어 차지하는 황금 같은 귀한 존재가 되었다.
지난 ‘원산지만큼 흥미로운 커피 품종 이야기 2: 침략과 도난의 역사, 티피카’ 편에서 소개했듯이,에서 소개했듯이, 커피를 접한 뒤 이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유럽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중심으로 커피를 대량 재배하기 시작한다. 1616년, 아라비아의 엄격한 통제를 뚫고 커피 묘목을 암스테르담으로 빼낸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 커피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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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태양왕이라 불린 절대군주, 루이 14세
절대 왕정의 대표적인 전제 군주인 프랑스 루이 14세 또한 이러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루이14세는 프랑스 동인도 회사 소속이었던 ‘듀포게레 그레니어(Dufougeret-Grenier)’ 함장에게 예멘의 술탄으로부터 가져온 작은 커피 나무를 당시 식민지 중 하나인 부르봉 섬에 가져다 심도록 명했다. 1715년, 부르봉 섬에 도착한 함장은 이 커피 나무를 기반으로 아예 커피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9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첫 커피를 수출하게 되었고, 이후 18~19세기 경에는 섬 전역에 커피 재배가 이뤄지면서 많은 양의 커피가 해외로 수출되었다. 이것이 ‘마르티니크(Martinique)’에 심어진 티피카 종과 함께 원종에 가까운 재배종으로 꼽히는 부르봉 종의 시초다.
이러한 부르봉 섬에서의 재배는 커피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된다. 원산지는 같은 에티오피아지만 티피카 종과는 다른 ‘새로운 커피 품종’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부르봉 종은 프랑스 개척자들에 의해 1859년 브라질로 이식되었고, 특유의 깔끔한 산미와 뛰어난 밸런스로 그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후 영국령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등 동아프리카와 중앙 아메리카까지 전파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기 시작했다.
변이와 교배 통해 다양한 품종으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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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봉 커피 나무(좌), 브루봉 커피나무 잎사귀(우)
부르봉 품종은 가지의 마디 사이 간격이 좁은 편이고, 어린 가지는 본줄기에 대해 60도 각도로 자라난다. 어린 잎은 녹색 또는 청동색을 띠며, 커피 체리는 빈틈없이 빽빽하게 열리는 편이다.
기존에는 티피카의 돌연변이 종으로 분류되었으나, 일각에서는 ‘부르봉’ 원종이 존재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티피카 품종과 비교했을 때 부르봉 종의 나뭇잎이 넓고 체리는 더 작고 둥글며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수확량 또한 티피카보다 20~30%가량 많다. 하지만 주요한 커피 질병에 취약하고 강한 바람과 비에 약해 다른 품종과 비교했을 때 생산량은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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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봉 종 생두 열매
부르봉 품종의 생두는 작고 둥글며 단단하며, 센터컷은 ‘S’자를 그리고 있다. 감귤계의 새콤한 맛, 달콤한 뒷맛을 지니며, 티피카 종보다는 단단한 바디감을 지닌다는 평이 많다. 향미는 마일드하고 밸런스가 좋으며, 생산지에 따라 다양한 향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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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부르봉(좌), 옐로우 부르봉(우)
부르봉은 체리의 색을 따라 붉은색을 띠는 레드 부르봉(Vermelho)과 노란색을 띠는 옐로우 부르봉(Amarelo)으로 나뉜다. 부르봉은 티피카에 비해 유전적 변이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다양한 변이와 교배가 이루어졌고, 현재 수십 여종의 품종으로 분화됐다. 대표적인 브라질의 옐로우 부르봉 종은 레드 부르봉 종과 티피카의 아종인 ‘아마렐로 드 보투카투(Amarelo de Botucatu)’ 종 사이의 자연 교배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이 밖에 중미에 있는 ‘테키식(Tekisic)’ 종은 엘살바도르에서, ‘버번 마야궤스(Bourbon Maya guaz)’ 종은 르완다와 브론디, 가뭄에 저항력이 있는 SL28 종은 케냐, N39 종과 ‘아르샤종(Arusha)’ 종은 탄자니아에서 재배되고 있다.
레위니옹 섬에서 재탄생한 ‘부르봉 뽀완뚜(Bourbon Pointu)’
그렇다면 부르봉 종은 현재 레위니옹 섬에서 재배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19세기 들어 가뭄과 수해 등으로 이 커피 종은 수난을 겪었고, 사탕수수 재배와 함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설탕 관련 산업이 레위니옹 섬 경제의 주축이 되면서 그나마 해변가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커피 생산조차 거의 중단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레위니옹 섬의 부르봉 커피는 21세기 들어 재탄생한다. 일본의 유명한 커피 회사 연구소장인 ‘요시아키 카와시마(Yoshiaki Kawashima)’가 레위니옹 섬에서 부르봉 품종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후 프랑스 정부 및 현지 농민들과 협력을 통해 레위니옹 섬에서 자라난 브루봉의 자연계 돌연변이인 ‘부르봉 뽀완뚜(Bourbon Pointu)’를 복원하여 2009년 처음으로 외부에 판매했다. 이 커피는 당시 100g당 7,350엔(약 74,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즉시 매진될 만큼 전 세계 커피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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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뽀완뚜
부르봉 뽀완뚜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원형에 끝이 약간 뾰족한 모양이다. 원래의 부르봉 품종에 비해 잎이 작고, 생두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또한 다른 아라비카 품종보다 카페인 함량도 낮으며, 풍부한 과일향과 단맛이 나 루이 15세,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가 가장 좋아했던 커피라고 한다. 1년에 딱 한 번 소량으로 한정 생산하여 판매한다고 하니 마치 매년 11월에 딱 한번 선보이는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 와인을 연상케 한다.
[참고자료]
그린커피, 신혜경 이상규, 커피 투데이, 2015
로스트마스터, (사)한국커피협회, 커피투데이 2013
스페셜티 커피 테이스팅, 호리구치 토시히데, 웅진리빙하우스, 2015
Coffee Plants of the World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
Exceptional green beans, UCC-europe.co.uk
All about coffee, William Harrison Ukers, Simon&Schuster,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