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없는 일상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국내 프랜차이즈 카페 점포 수만 해도 2015년 기준(통계청 발표)으로 10,000개를 넘을 만큼 카페라는 공간은 현대인들에게 집 못지않은 친숙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외로운 사람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카페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공간이었을까? 사람들이 최초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언제이고,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europeana.eu/portal/en
터키의 커피하우스 풍경. 지금의 카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15세기 – 커피하우스의 탄생
역사 속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475년 지금의 터키 지역인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키바 한(Kiva Han)’이라는 커피하우스가 개점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중동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이자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는데, 여자들에게는 남편이 매일 정해진 양의 커피를 제공하지 못하면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이 당시 커피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하다.
17~18세기 – 커피하우스의 성장
지금의 터키를 포함한 중동의 도시에서 커피가 인기를 얻었으니,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에 커피 문화가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1529년 터키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에 커피가 전파되었고, 유럽 각국으로 커피하우스가 퍼져 나갔다. 1650년 영국 옥스퍼드 지역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개점하고, 2년 뒤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등장한 이후 17세기 말 런던에서는 2천여 곳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성업 중이었다고 한다. 당시 런던의 인구가 60만이었으니, 시민들이 인사로 “단골 커피하우스가 어디입니까?”라고 묻곤 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었을 것.
Photo by The Public Domain / flickr.com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 풍경. 신사들이 커피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커피하우스의 풍경을 오늘날의 카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당시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 불렸는데, 이는 커피값 1페니만 지불하면 장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의 토론을 경청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정치, 예술, 문학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커피만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계층 구분 없이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생각을 경청할 수 있는 민주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커피하우스는 사회비판의 장이 되기도 했다.
18세기 들어 전성기를 맞은 프랑스의 카페 역시 지금의 프랑스 카페 하면 떠오르는 낭만적 공간만은 아니었다. 은밀한 가십거리 공유부터 학문적인 토론까지 열리고, 동시에 정치적 인사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1686년 개점 이후 아직까지 파리에서 영업 중인 '르 프로코프(Le Procope)'는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가 즐겨 찾은 곳이기도 하다.
1887년 오픈해 지금까지도 파리에서 성업 중인 ‘카페 레 되 마고(Café des Deux Magots)’
19세기 – 예술가, 문인들의 아지트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카페는 많은 문학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변모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의 카페는 예술가들이 글을 쓰거나 악상을 떠올리는 영감을 얻는 장소였다. 1876년 개점 후 카페 문화를 꽃피운 '카페 첸트랄(Cafe Central)'은 프로이트, 스탈린, 히틀러 등 역사적 인물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고, 유럽 최초의 문학 카페로 불리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Florian)'은 루소, 괴테, 스탕달의 단골 카페였다. 1880년대 문을 연 뒤로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프랑스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와 '카페 레 되 마고(Café Les Deux Magots)' 역시 헤밍웨이, 피카소, 사르트르, 에디트 피아프, 카뮈 등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 관객이라면 그 당시 문인과 예술가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탄생
지금까지의 카페가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면, 20세기의 카페의 중심은 서서히 미국으로 옮겨 가기 시작한다. 1980년대가 되면서 그 형태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시작은 하워드 슐츠라는 미국의 사업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1971년 시애틀에서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원두 판매점을 운영하던 슐츠는 여행 중 방문한 밀라노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영감을 얻어 스타벅스를 에스프레소를 판매하는 카페로 변신시킨다. 바쁜 미국인들에게 쉽고 빠르게 커피를 만들어 파는 커피하우스가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동업자들의 반대 등 굴곡이 있었지만 결국 스타벅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탄생하게 된다.
Saaleha Bamjee / flickr.com
미국의 대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Blue Bottle)’
카페의 현 주소, 그리고 스페셜티 커피 시장
스타벅스를 필두로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가 대중화되면서 커피 시장은 물론, 프랜차이즈 카페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을 만큼 성장해왔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커피를 즐기는 새로운 물결이 불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중심에 스페셜티 커피가 있다. 고유의 향미와 개성이 풍부하고 재배환경, 기후 등 특정한 평가 기준으로 엄선된 커피를 뜻하는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의 ‘블루보틀(Blue Bottle)’, ‘스텀타운(Stumptown)’,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등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국내 역시 스페셜티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가 인정하는 ‘큐그레이더(Q-Grader)’ 자격을 얻은 서필훈 대표가 창립한 ‘커피리브레’ 외에도 미국의 나인티플러스(NINETY PLUS) 원두를 맛볼 수 있는 카페 ‘나무사이로’, 국내 최초 큐그레이더 공식 인증기관이었던 루소(LUSSO)가 운영하는 카페 ‘루소랩’ 등 스페셜티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매장이 증가하고 있다.
한때는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주제를 시끌벅적 논하던 장이자, 예술가들이 사랑한 아지트였으며, 지금은 일상에 치인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하는 카페. 이번 주말엔 좋아하는 사람들과 단골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그 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 자료]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카페의 역사. 강주헌(역). 효형출판. 2002
우리가 몰랐던 세계사. “커피하우스의 역사”. 네이버캐스트
홍차이야기. “커피하우스”. 네이버 지식백과
우지경. “비엔나 카페 기행 ① 클래식 카페 사용법”. 중앙일보. 2016
표정훈. “파리의 카페는 자유를 속삭이던 ‘모반자 소굴’” 문화일보. 2015
장연주.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 “스페셜티 커피는 숨겨진 얼굴을 복원하는 작업””. 헤럴드경제. 2015
백승선.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주간동아. 2014
임병걸.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⑩ 커피 공화국,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KBS NEWS. 2016
서울경제신문. “그게 '그냥커피'라면 이건 '스페셜티커피'”. 네이버포스트. 2015
한스미디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 커피”. 네이버포스트. 2016
김용현. “스페셜티 커피, 즐기기”. 슈어. 2014
이윤희. “'로컬 브랜드 커피의 반란'”. 이코노믹리뷰. 2015
“Lusso Coffee”. 루소 공식 홈페이지
“프랜차이즈 카페 창업시장의 과포화 상태…”. 한국경제.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