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생산지를 가다 10번째 국가는 바로 예멘(Yemen)이다. 최초로 커피가 재배된 나라, 최초의 커피 무역이 이루어졌던 항구가 있는 나라, 커피 역사에 있어 큰 의미가 있는 나라, 바로 예멘이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에티오피아와 마주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 칼디 이야기만큼 유명한 커피 유래 전설도 전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멘에서는 커피가 대중적인 기호 식품도 아니고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의 커피 산업 지원이나 농민들의 관심이 적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커피 산업의 발전이 다른 커피 생산국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어 전통적인 재배 방식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역으로 예멘 커피를 유기농 커피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커피의 귀부인’ 또는 ‘커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모카커피가 예멘의 대표 커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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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커피의 주요 특징
예멘의 커피 유래는 수도승 오마르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건으로 모카항 근처의 산중으로 쫓겨난 오마르가 우연히 커피 열매를 발견해 먹게 되었고 산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커피 열매를 사용해 병자를 구하며 커피가 알려졌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내용도 정확하지 않고 조금씩 다른 버전이 존재해 커피 유래는 에티오피아의 칼디 전설이 더 신빙성이 높다. 하지만 이 전설에 등장하는 ‘모카’는 예멘의 커피 역사에 있어서도 세계 커피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이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알아보자.
하라즈 지역의 커피 경작지,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커피를 재배한다.
예멘의 커피는 주로 자연 재배되고 산악지대의 경사면을 활용한 ‘테라스(Terrace)’라고 하는 경작지에서 생산된다. 대부분 소규모 단위의 농가에서 비료도 사용하지 않고 가지치기 정도의 최소한의 관리만 하며, 기계보다는 사람의 손으로 재배, 수확 작업 등이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수확 후의 프로세싱도 물을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방식을 사용한다. 때문에 예멘 커피 원두는 크기도 일정하지 않고 종종 재래종의 원두가 섞이기도 해 로스팅 후의 원두 색도 불규칙하다. 품종 개량도 거의 없어 아라비카가 주로 생산되며, 재래종도 많이 남아 있다.
주요산지 |
베니 마타르(Bani Mattar), 하라즈(Haraz) 사나 (Sana’a) 등 |
재배품종 |
아라비카(Arabica) |
수확시기 |
6월 ~ 12월 |
정제법 |
내추럴(건식법) |
등급분류 |
3등급 (결점두에 의한 분류) |
대표커피 |
예멘 모카(Yemen Mocha), 모카 마타리(Mocha Mattari), 모카 히라지(Mocha Hirazi), 사나니(Sanani) |
품질은 결점두에 따라 3개 등급으로 구분하는데, 최고 등급을 마타리(Mattari)라고 하며 그다음은 순서대로 샤르키(Sharki), 사나니(Snani)라고 한다. 하지만 등급 명칭 및 기준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커피 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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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원두는 크기가 작고 불규칙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멘 커피는 어떤 로스팅에서도 복합적인 향미를 내는 매력적인 커피로 알려졌으며,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커피로 평가받고 있다. 고흐가 좋아했던 커피로 유명한 베니 마타르 지역의 모카 마타리(Mocha Mattari)는 과일 향도 풍부하고 바디감도 묵직해 세계적으로도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하라즈 지역의 모카 히라지(Mocha Hirazi)는 모카 마타리에 비해 연하지만 복합적인 과일 향에 와인 느낌의 향미가 특징이며, 사나 지역의 커피는 한 가지 향미가 두드러지는 다른 지역 커피에 비해 예멘 커피 특유의 산미, 초콜릿 향 등이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Keith Fahlgren@flickr.com
코나 원두(좌)와 예멘 원두(우) 비교 사진
예멘 커피의 주요 생산지는 수도인 사나(Sana’a)를 중심으로 베니 마타르(Bani Mattar), 하라즈(Haraz) 등지로 예멘의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커피를 거래했던 무역항 모카도 이 주요 생산지역과 인접한 홍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en.wikipedia.org
유럽으로 커피가 전해졌던 17세기의 모카 전경
이 모카라는 항구 도시는 17세기 커피를 유럽으로 세계로 전파하는 전초기지였고 ‘최초의 커피 무역항’이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멘 커피 하면 자연스럽게 ‘모카’를 떠올리게 되었고, 예멘의 커피도 ‘모카’라는 지명을 활용한 이름이 많은 것이다. 여기에 예멘 커피의 특징인 초콜릿 향까지 더해져 예멘 커피는 모카 커피, 모카 커피는 초콜릿 향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예멘의 모카 원두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초콜릿 향이 강하거나 그러한 맛이 나는 베리에이션 음료는 ‘모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많이 마시는 초콜릿 시럽이 들어간 ‘카페 모카’가 바로 그 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다른 나라에서도 커피를 재배하게 되면서 모카 항구의 명성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자국 내에서도 커피 소비가 많지 않아 커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조금 뒤처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예멘 커피가 유기농 커피로 알려지고 그 독특한 향미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예멘 커피에 대한 인지도도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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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커피를 대접하는 모습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모카 항구의 쇠락과 함께 커피의 역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예멘은 그 전통이 유지되고 품종이 보존되면서 다시금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예멘은 이슬람교의 아랍어권 국가로 주로 터키식으로 커피를 즐기며 아직도 커피 체리를 통으로 말리거나 살짝 구워서 끓이는 전통 음료 키시르(Kishr)를 마신다고 한다. 모카 항에서 마시는 예멘 모카 마타리의 향은 어떨지, 키시르의 맛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진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원두는 아니지만, 혹시 언젠가 예멘 원두를 만나게 되면 꼭 그 맛과 향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참고 자료]
국제커피협회 ICO(http://www.ico.org)
아네트 몰배르. 커피중독. 최가영(역). 서울: 시그마북스, 2015
호리구치 토시히데. 스페셜티 커피 테이스팅. 웅진리빙하우스, 2015
매트 로빈슨. 커피 러버스 핸드북. 박영순 외 3인(역). 서울: 커피비평가협회 진서원, 2015.
“커피의 역사”, 위키 백과
“예멘커피”,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예멘 모카”,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모카 히라지”,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사나니”,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모카 마타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모든 커피는 모카로 통한다”, 커피로드, 박종만, 네이버 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