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뜸들이기 (Wetting)
분쇄커피에 물이 최초로 공급되면 함수율이 낮은 분쇄커피들이 물과 만나 자신의 공동으로 물을 끌어들인다. 이어서 커피성분을 내놓아 용해시킨 후 다시 액체 속에서의 확산을 통해 추출이 진행된다. 앞의 이론 파트를 통해 우리는 이런 일련의 추출과정을 확인하였다.
만일 본격적인 추출을 위해 1회의 물붓기에 해당하는 물을 뜸들이기 과정 없이 바로 진행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분쇄커피 층을 통과하는 짧은 시간 동안 미처 커피성분을 받아들이지 못한 물이 성급하게 드리퍼를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면서 분쇄커피입자들이 자신의 커피성분을 효율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전작업이 바로 뜸들이기 과정이다.
뜸들이기는 매우 치밀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뜸들이기에 너무 적은 물을 사용하면 수분이 채 닿지 못하는 커피가 생길 수 있고, 너무 많은 물이 공급되면 뜸들이기를 초과하여 불완전한 추출이 미리 시작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칼리타 드리퍼는 내부에 골고루 물이 공급되는 상황을 모니터링 하기에 적합한 드리퍼이다. 정상적으로 뜸들이기가 진행되었을때, 아래와 같은 현상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① 칼리타 드리퍼의 세 구멍으로부터 물방울이 각각 떨어지되, 시간의 편차 없이 동시에 골고루 떨어지기 시작했다면 뜸들이기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드리퍼 내부에서 물이 어느 한 부분으로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분포되어 뜸들이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드리퍼의 각 구멍으로부터 원활히 추출되는 모습]
뜸들이기가 올바르게 진행되었다면, 본격적인 물붓기가 시작되었을 때 이 그림에서처럼 세 개의 구멍으로부터 치우침 없이 일관된 물빠짐이 일어나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핸드드립식 커피 추출에서 어떤 사람들은 드리퍼 내에 물길이 형성되는 부작용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길이 형성되는 것은 그릇된 뜸들이기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칼리타 드리퍼로 추출할 때, 잘못된 뜸들이기로 말미암아 세 개의 구멍 중양쪽 두 개에서 물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게 되었다면, 이후의 본격적인 물붓기 과정을 거쳐 추출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가운데 구멍으로는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뜸 들이기 과정은 이상적인 추출수율의 균형을 추구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라 하겠다.
② 뜸들이기가 진행된 드리퍼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분쇄커피의 가장자리로 여과지가 젖어 들어가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때 점차 젖어들어가는 정도가 일정하여 드리퍼 상부로 젖은 면이 원형을 이루며 올라간다면, 바람직한 뜸들이기가 진행되었다고 본다.
[뜸들이기 과정의 분쇄커피의 표면과 여과지 모습]
③ 분쇄커피가 가운데를 중심으로 공모양으로 고르게 부풀어 올랐다면, 커피량의 분포도에 따라 방사형으로 고르게 물이 공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스팅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커피는 뜸들이기 과정 중 거품이 과도하게 올라오게 되는데, 당황하지 말고 물줄기 궤적이 거품 위를 지날 때 주전자의 높이를 일시적으로 조금 더 높여줌으로써 거품에 대응할 수 있다.
[물붓기 모습]
* 뜸들이기 과정에서 드리퍼 아래로 과연 몇 방울의 커피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에 대해서는 명쾌한 정답은 없다. 물이 과하게 흐르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다만 너무 적은 양의 물이 투입되어 물에 닿지 않은 상태로 분쇄커피가 남게 되는 상황은 더 바람직하지 않은 뜸들이기 방법이므로 피해야 할 것이다.
•로스팅 정도에 따른 뜸들이기 물 양과 횟수 조절
강한 볶음도로 로스팅이 진행될수록 원두 내의 공동은 더욱 커지는데, 이는 물을 받아들이는 조직 내부의 표면적이 커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일한 20g의 분쇄커피를 사용하더라도 볶음도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커피를 뜸들이기 하는데 적합한 물 양은 서로 다르다. 즉, 공동이 넓은 강한 볶음도의 커피를 뜸들이기 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뜸들이기 시간을 약한 볶음도의 커피와 동일하게 30초로 잡고,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물을 한 번에 투입하면 볶음도 차이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경우,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은 강한 볶음도의 커피 뜸들이기는 10~15초 간격으로 2~3회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다. 강한 볶음으로 인해 공동이 넓어진 커피입자는 물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며, 넓은 표면적을 통해 보다 짧은 시간에 커피성분을 내놓기 시작한다. 이때 추가적인 뜸들이기 물을 공급하는 것은 1차로 투입한 물이 이미 공동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순간적으로 부족해진 물을 보충하는 의미와, 1차로 투입한 물이 유효성분의 포화상태를 넘어서 잡미까지 받아들이기 전에 미리 농도를 떨어뜨릴 보완의 의미가 함께 작용한다.
실제로 강한 볶음 케냐의 경우, 1회 물 투입으로 30초 뜸들이기를 진행한 것과 15초 간격으로 2회 뜸들이기를 실시한 것은 맛과 향이 면에서 사뭇 다른데, 긍정적인 향미 표현력에 있어서 후자 쪽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대로 약하게 볶은 커피의 경우에는 강볶음에 비해 공동의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으므로 물이 조직 내부로 스며드는 시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뜸들이기를 통해 물과 만나는 시간을 40초 정도로 더 길게 잡고, 2~3회로 나누어 소량의 물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방법이 유용할 때가 있다.
여기서 뜸들이기를 위한 물주기 횟수, 즉 1회로 끝내느냐, 2~3회로 나누어 하느냐를 두고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뜸들이기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각 커피의 특징이나 분쇄도, 추구하는 맛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자. 최적의 뜸들이기는 절대적인 하나의 공식이 아니라 커피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부터 시작된다 하겠다.
•커피량이 늘어날 경우에 따른 뜸들이기 방법
3~4인용보다 더 큰 용량의 드리퍼를 사용하여 추출하는 경우, 즉 더 많은 분쇄커피를 대상으로 뜸들이기를 진행해야 하므로 각각의 커피입자에 할당되는 물 양의 편차를 줄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뜸들이기 대상인 커피량이 많으므로, 그 시간 역시 정상적인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길어질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횟수를 나누어 뜸들이기를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뜸들이기 시간
30초 내외를 뜸들이기 시간으로 가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커피의 종류나, 양, 의도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함으로써 더 품위있는 커피를 얻을 수 있다.
먼저 분쇄도에 따른 뜸들이기 시간을 생각해보자. 동일한 분량의 분쇄커피라 할지라도 더 가는 입자로 분쇄된 커피는 뜸들이기 시작 후 20초를 지나는 시점에서 벌써 잡미가 추출될 수 있다. 따라서 진한 커피를 위해 더 가는 분쇄도의 커피를 준비하였다면, 반드시 30초를 넘기는 뜸들이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반대로 굵게 분쇄된 커피는 내부에까지 물이 진입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소요되므로 30초 이상의 시간을 주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번에는 볶음도의 차이에 따른 뜸들이기 시간을 생각해보자. 동일한 분량, 동일한 분쇄도의 커피라도 볶음도가 낮으면 물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므로 뜸들이기 시간을 조금 더 부여하는 것이 원활한 추출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약한 볶음 커피의 경우 뜸들이기 시간을 5~10초가량 더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된다.
[분쇄도와 볶음도의 차이에 따른 뜸들이기 시간 조절]
9) 추출
지금까지 우리는 핸드드립식 커피 추출을 위한 퍼즐을 맞춰왔다.
이제 그 마지막 퍼즐인 추출 단계에 이르렀다. 앞의 드립포트 단 원에서 이미 추출실무와 관련한 많은 요소들을 거론하였고, 그 원리와 스킬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제 핸드드립커피 추출과정의 최종 관문이자 정점이 되는 추출의 진행과 유의점을 확인해보자.
•물붓기 회차별로 투입하는 물 양의 안배
추출 변수의 이해 단원에서, ‘선형적 추출’과 ‘비선형적 추출’을 살펴보았다. 선형적 추출은 물붓기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마칠 때까지까지 물줄기를 끊지 않고 이어서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물붓기 회차는 무의미하며 부드럽고 여성적인 경향의 맛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비선형적 추출은 뜸들이기 과정 이후 여러 회차를 통해 단속적으로 추출을 진행하는 방식으로서, 여기에는 회차별로 적절한 사전 계획을 수립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현상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본격적인 추출이 시작된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출되는 성분이 다름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맛의 변화가 가장 주된 요소라 하겠다.
핸드드립 커피 추출과정을 분석하기 위하여 세 개의 드립서버를 준비하자. 그리고 추출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뜸들이기 직후부터 약 70mL의 커피가 추출되는 첫 1분 구간을 ‘추출 초기’, 드립서버를 바꾼 상태에서 70mL 내외가 추출되는 다음 1분 구간을 ‘중기’, 다시 드립서버를 교체하고서 70mL가 추출되는 마지막 1분을 ‘후기’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표시될 수 있다.
여기에서 추출된 총 210mL의 커피는 3개의 서로 다른 드립서버에 각각 70mL씩 담겨있다. 각각의 드립서버에 담긴 커피의 맛은 다음과 같은 경향을 띤다.
※ 추출조건 : 콜롬비아, City 볶음도, 중간 굵기 분쇄, 칼리타 드립퍼, 최초 물붓기 온도 90℃, 뜸들이기 후 추출시간 3분
[추출 진행 시기별 커피 맛의 특징과 변화 추이]
추출 초기에는 다양한 맛들이 경쟁적으로 발현된다. 쓴맛은 추출이 진행되는 동안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추출되지만, 신맛은 추출 전반부에 상대적으로 많이 추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추출물의 농도가 눈에 띄게 묽어지는 현상도 관찰된다. 이때 추출되는 커피의 맛은 전체적으로 매우 단조로우며, 물을 탄 듯한 쓴맛과 희미한 떫은 맛 정도의 향미 성분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시점까지의 추출을 끝으로 과정을 종료한 후 얻어진 커피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며, 심지어 ⓐ시점까지의 추출로 소량의 진한 커피를 취향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이 역시 기호식품인 커피가 주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선물이며, 핸드드립식 추출법 최대의 매력이기도 하다. ⓐ시점까지의 맛을 원하되 양을 더 많이 얻고자 한다면, 커피량을 늘이고 늘어난 커피량에 따라 기타 변수들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만족할만한 양의 커피를 취향대로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산지와 로스팅 정도의 변수마저 곱해지면, 변화무쌍한 핸드드립식 추출 커피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평생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일반적으로 추출 시간을 3분 전후로 두고 후기에 추출되는 성분마저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에 빗대볼 수 있다. 완전한 한 잔의 커피는 오케스트라와 같아서, 바이올린도 필요하지만 바순이나 오보에, 팀파니도 교향곡을 연주하는 데는 꼭 필요한 이유와 같다. 다양한 맛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제각기 적절한 정도의 맛을 발산하고, 이러한 맛들이 최적으로 어우러졌을 때 균형 잡힌 커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이올린 소리를 더욱 또렷이 듣기 위해 바이올린 소나타를 선택하거나, 더블 베이스의 소리가 좋아 아예 재즈 트리오로 넘어가는 것 역시 개인의 취향이자 자유다.
•물붓기 시 드립포트의 높이 (물줄기의 길이)
이론에 충실하자면, 드립포트의 물붓기 궤적은 지면과 나란한 면, 즉 수평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추출자와 가까운 지점의 물줄기 길이와 먼 곳의 물줄기 길이가 같아져서 드리퍼 내부에 일어나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물붓기 회차가 진행될수록 드립포트의 높이를 조금씩 낮춰가는 방법, 즉 단계적으로 분쇄커피가 담겨 있는 드리퍼의 수평면과 가까운 위치로 내려가며 물붓기를 진행하는 방법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1회차 물붓기는 아래 그림의 ⓐ높이에서, 2회차 물붓기는 ⓑ높이에서 진행하고, 3회차는 물붓기는 커피면에서 아주 가까운 ⓒ높이에서 이루어지도록 드립포트의 높이를 낮추어 가는 방법이다.
[물붓기 회차별 드립포트 높이 조절 방법]
물붓기 회차가 진행될수록 앞서 언급된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들로 인해 유속이 차츰 느려지고, 이미 추출수율이 높아져 있는 상단부의 경우 소량의 물에 의해서도 커피입자가 유동되는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추출 목표량이 많은 3~5인 분량 이상의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더 많은 커피량을 사용하여 한꺼번에 추출을 시도할 때 이런 현상 발생의 빈도가 높다.
여기서 추출자는 한 가지 의도를 생각할 수 있다. 상단부 커피입자의 불필요한 유동을 막고, 새로 투입되는 물 역시 커피 성분을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더 부여하자면, 후반부의 물줄기를 커피 면에 가까운 상부에 얹힐 수 있도록 주전자의 높이를 낮추고, 오로지 중력에 의해서 순차적으로 물이 빠져 내려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이 물을 밀어내는 원리를 항시 염두에 두고, 중력의 힘에 의지하는 현명한 선택이 되는 스킬이다.
[출처]
COFFEE&TEA 17/11월호
Technic | Brewing : 커피 추출과정(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