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Coffee

Coffee Lab

원두부터 맛있는 커피 한잔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Coffee Lab

가장 순수한 커피와 함께 하는 법

커피 커핑에 대하여

2016.04.20. 오전 09:15 |카테고리 : Coffee Lab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를 맡으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이 장면에서 유래가 되어 특정 냄새를 통해 숨어있던 기억이 살아나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누구나 우연히 코 끝을 스치며 지나간 낯익은 커피 향기로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 프루스트 현상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만큼은 기억 속에 감미로웠던 그 커피가 더욱 간절했을 것이리라. 커피에는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추억만큼이나 다양한 향기가 담겨있는데, 그 수는 무려 수 백 가지나 된다. 원두에 따라, 혹은 로스팅에 따라 독특한 개성을 뽐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원두의 맛과 향기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을 커핑(Cupping)이라고 한다.

4월 3차_001(저작권) Nick Webb / flickr.com 

커핑에 대해 말하기 전에 커핑을 전문적으로 하는 커퍼(Cupper)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 커퍼는 '커피 감별사'라고도 하며 커피 생산지의 기후, 재배 방식 등 원두가 생산되기까지의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커피의 맛과 향을 감별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는데 이 평가 과정이 바로 '커핑'이다.

커핑을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생두의 품질과 맛을 평가하고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서이며, 두 번째는 생두에 가장 알맞은 로스팅 포인트를 찾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특성이 서로 다른 품종의 원두를 블렌딩할 때 그 특징들이 잘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 혹은 잘 어울리는지를 보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렇다면 커핑은 커퍼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일까? 그렇지 않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피의 맛과 향미에 대해 비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커피를 즐기는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퍼블릭 커핑’이라고 해서 전문가와 함께 커핑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간단한 도구 몇 가지만 준비하면 집에서도 커핑을 해볼 수 있다.

커핑은 커피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을 최대한 줄이고 같은 조건으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4~5개의 똑같은 컵을 준비하고 4~5가지의 각기 다른 원두를 준비한다. 각각의 원두는 동일한 무게로 계량한 뒤 분쇄는 커핑 직전에 한다. 그래야 향미의 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분쇄된 원두를 컵에 10g 정도를 담고 물은 200ml를 붓는다. 물을 붓기 전에 분쇄된 원두의 향을 프레이그런스(Fragrance)라고 한다.

 MckaySavage / flickr.com 
떠오른 커피가루로 크러스트가 형성된 모습

프레이그런스를 확인한 뒤 분쇄한 원두가 담긴 컵에 93°C 정도의 물을 붓는데 정확한 온도 측정이 어렵다면 끓인 물을 15분 정도 상온에 놓아두면 된다. 컵이 가득 찰 정도로 물을 붓고 그 상태로 3~5분 정도를 기다린다. 조금이라도 충격을 주면 커피의 향미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커피가루가 떠올라 표면에 막(Crust)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을 스푼으로 살짝 미는 스키밍(Skimming)을 3~4번 반복해주고 그 사이로 올라오는 향을 확인하며 평가한다. 향을 맡을 때는 "흥흥" 대는 느낌으로 빠르게 흡입해주는 것이 포인트.

커피의 온도가 70℃ 이내로 떨어지면 그때부터 테이스팅을 시작한다. 단순히 스푼으로 커피를 떠서 입에 넣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흡입하듯이 빠르게 입안에 분사해줘야 하는데, 특히 혀와 위턱에 최대한 많은 커피가 넓게 퍼질 수 있도록 흡입한다. 이때 잔을 옮길 때마다 입안을 헹궈줘야 하고 사용한 스푼도 깨끗한 물에 헹군 뒤 사용해야 정확하게 커피 맛을 확인할 수 있다. 커피의 온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변하는 산미, 바디감, 밸런스를 단계별로 관찰하고 온도가 많이 낮아지면 커핑 과정을 마무리 짓는다.

4월 3차_003(저작권) Nick Webb / flickr.com 

커핑에서는 각 단계에서 코와 입으로 느끼는 맛과 향미 그리고 질감을 아래 5가지 항목에 대해 평가한다.

1. 프레이그런스(Fragrance), 아로마(Aroma)
물을 붓기 전 분쇄된 상태의 향인 프레이그런스와 물을 부은 다음의 아로마가 있는데, 물을 붓고 나서는 커피가루 막을 깨뜨렸을 때 나오는 향을 중점적으로 확인한다.

2. 플레이버(Flavor)
커피를 입에 머금었을 때, 그리고 커피를 마신 후 코와 입에서 느껴지는 맛과 향의 여운에 대한 복합적인 느낌을 말한다. 커피에는 바닐라, 밀크, 캐러멜, 초콜릿, 너트, 과일 등 다양한 향미가 있는데 더 많은 향미를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확인해보자.
미국 SCAA의 Coffee Taster’s Flavor Wheel 보기

3. 애프터 테이스트(After taste)
커피를 뱉거나 삼킨 후 느껴지는 고유한 향을 말하며, 어떻게, 얼마나 지속되는지 판단한다.

4. 어시디티(Acidity)
산미라고 하며, 입안에 머금는 순간 느껴지는 세기와 질로 평가한다. 과일향과 같은 상큼한 신맛은 밝은(Brightness) 산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시큼한(Sour) 신맛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특히 식어가는 과정에서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

5. 바디(Body)
커피가 입안에서 주는 묵직함 또는 무게감을 말한다. 바디감이 풍부한 커피일수록 입에 머금었을 때 중량감이 느껴지며 매우 강렬한 맛이 나는 반면 바디감이 적은 커피는 물같이 느껴진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우유와 물을 각각 입에 머금었을 때를 떠올려보자.

4월 3차_004(원본) Monkey Business Image / Shutterstock.com
함께하면 더 즐거운 것이 커피다

수 백가지가 넘는 커피의 향을 우리가 다 구분할 수는 없다. 그러니 혹시 첫 커핑에서 맛과 향미를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노력이 기본이 되어야 하겠지만 시간과 경험을 통해 해결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때문에, 처음부터 혼자 하는 것보다는 카페에서 진행하는 ‘퍼블릭 커핑’에 참여해 전문가들과 함께 시작한다면 커피의 맛과 향미를 표현하는 방법의 실마리를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과 커피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커핑을 하고 나면 평소 알아채지 못 했던 향미를 느끼게 되고 좀 더 깊이 있게 커피를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커피를 찾을 수도 있고 직접 블렌딩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커핑을 통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넓어진 것이다. 어디선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커피. 그 커피를 찾기 위해 커핑은 기꺼이 나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이제 그 안내를 따라 망설이고 있는 마음의 닻을 올리고 돛을 펴라. 출항이다!

[참고자료]
호리구치 토시히데. 스페셜티 커피 테이스팅. 윤선해(역). 서울: 웅진리빙하우스, 2015.
김윤숙. "커피 감별사". 네이버캐스트. 2013
최대봉."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커핑'". 내일신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