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를 기억하는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노인의 버킷 리스트 실행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분한 사업가 에드워드는 루왁 커피(코피 루왁, Kopi Luwak)를 즐겨 마신다. 루왁 커피는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추출한 커피로,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고양이 똥 커피’로 불리운다. 이 커피는 연간 생산량이 400~500kg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로 유명하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원두 생산과정과 다른 독특한 과정을 거치거나 재배 방식이 다른 커피가 또 있을까? 맛이나 향미의 특징은 어떻고 무엇이 그 커피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궁금함을 못 이기고 독특한 방식이나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대표적인 커피 몇 가지를 찾아보았다.
유기농 커피의 대명사, ‘예멘 커피(Yemen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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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커피가 경작된 나라는? 정답은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이다. 예멘 커피는국내에선 조금 생소하지만 특유의 향미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언 코나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로 유명하다. 예멘을 다른 커피 생산지와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비료를 거의 쓰지 않는 유기농 커피라는 점이다. 주로 소규모로 경작하고 최소한의 가지치기만 하는 등 기계나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을 최소화시켰으며 자연적인 건조 방식인 건식법(Dry Method)를 이용해 가공한다.
이렇게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기계보다는 사람을 손을 거치는 수작업 가공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생두의 모양이 일정치 못해 등급 분류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니 마타르(Bani Mattar)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카 마타리(Mocha Mattari)’는 시그니처한 초콜릿 향 외에도 풍부한 과일 향과 강한 신맛, 적절한 쓴맛과 단맛의 조화로 예멘 최고의 커피라 불린다. 고흐가 즐겨 마신 커피로도 유명하다.
영국 왕실이 사랑한 커피,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Blue Mountain)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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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커피와의 차별성을 위해 나무상자에 담아 커피를 수출하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블루마운틴은 자메이카의 섬 블루마운틴(Mt. Blue Mountain) 산비탈에서 재배되는 커피다. 서늘한 기후와 잦은 안개, 그리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 덕에 커피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이지만 블루마운틴 커피를 더 특별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해발 1,200m 이상 지역에 펼쳐져 있는 짙은 안개가 바로 그것. 짙은 안개 덕분에 커피나무의 성장이 더뎌져 타 지역에 비해 생두의 밀도가 높고 우수하다. 생산량이 극히 적어 다른 아라비카 커피에 비해 4배 이상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옅은 신맛과 쌉싸래한 맛, 부드러운 쓴맛과 단맛 등이 어우러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진 블루마운틴은 영국 왕실에서 즐겨 마시는 커피로도 유명하다. 유명세만큼 진품을 찾기 힘든 커피이기도 한데, 자메이카 커피 산업 위원회에서는 블루마운틴(Mt. Blue Mountain)의 1,200m 고도에서 생산된 커피만을 블루마운틴으로 인정하도록 법령을 정하고, 품질관리 또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해서 수출용 원두를 포대에 담지 않고, 나무상자에 넣는 등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물에게서 얻은 이색 커피, ‘루왁 커피(Luwak Coffee)’와 ‘블랙 아이보리(Black Ivory Coffee)’
일명 ‘고양이 똥 커피’로 알려진 루왁 커피. 인도네시아어로는 ‘코피 루왁(Kopi Luwak)’이라고 하며, Kopi는 커피, Luwak은 사향고양이를 의미한다. 사향고양이는 잡식동물로 커피 열매도 먹는데 후각이 발달해서 ‘잘 익은’ 원두만 찾아 먹는다고. 그리고 이 좋은 원두가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에서 외피만 소화되고 그대로 배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느 원두도 가질 수 없는 독특한 풍미를 가진 커피가 되는 것이다. 캐러멜, 초콜릿, 곰팡내 등의 향미가 나며, 씁쓸하면서도 산미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중후한 바디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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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좌) /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루왁 커피(우)
201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불리던 루왁 커피의 기록을 깬 커피가 등장했다. 바로 코끼리의 배변에서 얻은 커피인 ‘블랙 아이보리’가 그 주인공. 태국에서 탄생한 이 커피는 코끼리에게 커피와 바나나, 쌀밥과 쌀겨를 섞어 만든 특별식을 먹인 뒤 나온 배설물에서 커피를 골라내 만든다. 골라낸 커피는 음지에서 말리고 두 달을 숙성한 뒤 로스팅 과정을 거친 뒤 완성되는데, 쓴맛이 거의 없고 부드럽고 달콤하다고 한다. 캐나다의 사업가 블레이크 딘킨(Blake Dinkin)이 무려 9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고, 태국의 ‘골든 트라이앵글 아시아 코끼리 재단’에서 생산하고 있다.
다만 커피 애호가로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동물의 도움을 받아 생산되는 커피가 비싼 값에 팔리며 그 맛을 인정받는 이유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채취되었을 때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욕심이나 호기심으로 동물들이 희생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커피계의 네잎 클로버, ‘피베리(Pea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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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생두보다 크기가 작고 모양이 달라 결점두로 취급되었던 피베리
생두의 모양이 완두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피베리는 하나의 커피 체리 안에 한 개의 생두가 들어 있는 커피를 말한다. 전체 커피나무에서 2~10% 발견되는 변종으로, 일반적인 생두보다 크기가 작고 모양이 달라 예전에는 결점두로 분류되기도 했다. 커피 농부들은 피베리를 두 개의 생두에 들어갈 맛이 하나에 있다고 하여 ‘커피의 에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커피 마니아들은 피베리가 뛰어난 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과학적인 연구자료는 없다고 한다. 피베리는 보통 산미가 강한데 지역마다 로스티 정도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찾아볼 수 있다. 스페셜티 커피처럼 일반 생두와 분류하여 생산, 판매된다.
세계 곳곳의 독특한 생산 배경을 가진 커피들을 살펴보니 문득 영화 ‘버킷 리스트’의 잭 니콜슨 처럼 훌쩍 여행을 떠나 나만의 커피 버킷 리스트를 실천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지 않는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 펼쳐질 커피의 또 다른 역사에서 또 어떤 커피가 우리들을 즐겁게 해줄지, 커피의 무한한 변신을 기대해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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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모카 마타리”. 내 입맛에 맞는 60가지 커피 수첩. 네이버 지식백과
“블루 마운틴 커피”. 음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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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베리[Peaberry]”. 음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케냐 피베리[Kenya Peaberry]”. 내 입맛에 맞는 60가지 커피 수첩.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