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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의 작은 쉼표, 스웨덴의 ‘피카(FIKA)’ 문화

2018.01.17. 오전 09:00 |카테고리 : Coffee Story

비행기로 꼬박 13시간이 걸리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스웨덴. 머나먼 나라이지만,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혹자는 북유럽 신화를 누비는 해적 바이킹이나 매년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수상식을 떠올릴 것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바(ABBA)’가 생각날 것이다. 또한,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괄량이 삐삐닐스의 신기한 여행를 꼽을 것이고, 2030세대들은 패션 브랜드 ‘H&M’이나 가구업체 이케아를 바로 생각할 수도 있다. 스웨덴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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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istarules.maeil.com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모습

스웨덴은 유엔이 선정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의 행복도 순위에서 매년 상위를 기록하는 국가로도 유명하다. 높은 복지 수준과 사회보장 정책, 그리고 일상의 여유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찾는 문화가 사회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웨덴의 높은 행복 지수와 여유 있는 문화의 배경은 무엇일까.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하나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스웨덴의 문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커피. 스웨덴 사람들은 유럽에서 커피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예 스웨덴어로 커피와 함께 하는 휴식 시간을 의미하는 고유 단어인 피카(FIKA)’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피카는 휴식또는 멈춤을 의미하는 사회적인 행위로,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커피와 달콤한 간식을 즐기며 가족, 친구, 동료와 대화를 나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피카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바쁜 일과 속에서 번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일상의 관습이다. 실제로 스웨덴인들은 이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직장 내에는 피카가 업무 시간에 포함될 정도다. 앞서 밝힌 것처럼 스웨덴 사람들의 높은 행복도는 이러한 피카 문화가 한 몫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한해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1, 성공적인 한 해의 계획을 세우기 전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스웨덴의 피카 문화에 대해 바리스타룰스가 소개한다.

 

피카할까요? (Ska vi fika?)

스웨덴에서 피카없는 하루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스웨덴 문화의 핵심 요소다. 스웨덴어로 ‘Ska vi fika?(피카 할까요?)’는 비슷한 뜻의 영어 표현인 ‘Shall we have a coffee?(커피 한잔 할까요?)’ 보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자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피카를 청하는 것은 빠른 현대 사회 속에서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현재 함께하고 있는 시간을 즐기자는 의미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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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티타임을 나누는 모습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 중 몇 차례 시간을 내서 친구, 연인,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피카를 즐긴다. 상술했듯이 스웨덴 직장에서는 피카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의무다. 모든 회사가 피카를 위한 피카룸(FIKA Room)’을 따로 갖추고 있으며, 오전과 오후에 피카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다. 이때 직원들은 업무를 잠시 멈추고 다 함께 둘러 앉아 커피를 즐기며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스웨덴인들은 별도의 피카 타임 없이 커피를 홀로 마시며,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모습에 당혹스러워 하기도 한다. 스웨덴 직장인들은 피카를 회사 구성원간 관계를 다지고, 바쁜 삶에서 한발 물러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긴다.

항상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피카는 잠시 쉬면서 생각을 깨우고,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쉼표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을 지닌 피카

그렇다면 피카는 언제부터 스웨덴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걸까? 피카라는 단어가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3년이다. 커피를 의미하는 카페(kaffe)’의 두 음절이 도치되어 생긴 말인데, 사실상 다른 언어로 직역이 어려운 특유의 스웨덴어다. 동사와 명사로 모두 사용 가능한 이 단어의 기록은 1,900년대에서야 나타났지만, 사람들이 하나의 관습으로 피카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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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콘디토리(Konditori)’ 전경

1,700년대 초, 스톡홀름에 설립된 커피하우스는 현대적인 카페의 전신으로, 주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그런데 1,800년대경 커피하우스와 파티세리를 결합한 콘디토리(Konditori)’가 등장한다. 당시 콘디토리에 가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로, 특히 일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커피와 맛있는 케이크, 페이스트리 등을 먹는 전통이 생겼다. 아직도 스웨덴의 여러 도시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콘디토리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1,900년대에는 쉬르카페(Kyrkkaffe)’가 크게 유행한다. 스웨덴어로 교회 커피를 뜻하는 쉬르카페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사교 모임을 뜻하는데,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을 위해 교회가 커피, , 그리고 샌드위치, 케이크 등을 준비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커피는 사람들간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수단이었다. 1,900년대 중반에는 집에서 열리는 격식 있는 커피 모임인 카페렙(kafferep)’이 인기를 끌었다. 생일파티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카페렙이 열렸고, 카페렙에 오는 사람들은 항상 커피와 작은 쿠키, 케이크 등을 챙겼다. 이때 차려진 달콤한 빵과 케이크는 커피 빵이라는 의미에서 카페 브뢰드(kaffebrod)’라고 불렀다.

오늘날 피카는 커피에 간단히 쿠키나 빵을 곁들이는 일상적인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 학교, 직장 어디에서든 피카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피카가 주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스웨덴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법

스웨덴에서 커피는 글자 그대로의 커피가 아니다. 프랑스인에게 와인이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것처럼 스웨덴인에게 커피는 그 자체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커피 소비량도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축에 속한다. 조사 기관이나 방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매년 세계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스웨덴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진하고 쓴 다크 로스팅 커피를 즐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거 물의 경도가 높은 스웨덴 남부 지역에서 인기를 끌던 다크 로스팅 커피가 점차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스페셜티 커피로 대변되는 제 3의 물결이 스웨덴 커피 업계에 불기 시작하면서, 커피의 산지와 품질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커피의 산미와 풍성한 향미를 살리는 노르딕 스타일의 약배전 로스팅은 최근 스웨덴뿐 아니라 북유럽 커피를 대표하는 커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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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리 우유로 만든 라떼

독특하게도 스웨덴 사람들은 우유보다 귀리 우유(Oat milk)‘로 만든 라떼를 즐겨 마신다. 귀리 우유는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체 유제품이다. 귀리 우유는 귀리를 물에 불려 믹서로 간 다음 걸러낸 것으로, 두유보다 걸쭉한 농도와 크림 같은 질감이 특징이며 살짝 단맛도 난다. 열에 강하고 거품도 잘 나서 섬세한 라떼 아트 표현에도 제격이고, 커피 맛도 한층 더 달콤하고 고소하게 만들어 준다. 스웨덴인들은 귀리 우유로 만든 라떼에 대해 너무 달지도, 무겁지도 않은 맛이다.’라고 표현하는데, 국내에 흔치 않은 커피다 보니 그 맛이 어떻게 다를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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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전통적인 디저트, ‘셈라(Semla)’

또한 스웨덴 사람들은 피카를 즐길 때 커피와 함께 카르다몸(Cardamon)’을 뿌린 빵을 빼놓지 않고 즐긴다. 카르다몸은 허브향과 감귤향을 지닌 향신료로 향신료의 여왕으로도 불린다. 계피나 넛맥(nutmeg)과 잘 어울려 주로 페이스트리나 미트볼 등에 넣어 먹는다. 특히 아몬드 페이스트와 생크림으로 속을 채운 카르다몸 번인 셈라(Semla)’는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빵이다. 수천년 전 바이킹이 콘스탄티노플을 탐험했을 때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특별한 향신료는 스웨덴식 베이킹과 피카의 역사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피카

최근에는 일과 삶에 균형을 찾고자 하는 피카에 담긴 철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뉴욕에 소재한 카페 체인점 ‘피카(FIKA)’는 스웨덴의 피카 문화를 주제로 한 곳이다. 스웨덴 태생이지만 뉴욕으로 건너가 살고 있는 ‘라르스 오케르룬드(Lars Akerlun)’는 정신없이 바쁜 뉴요커의 일상에 휴식을 제공하면서, 모국의 전통인 피카를 알리고자 카페를 열었다고 말한다. 양질의 커피와 함께 스웨덴 축소판 같은 분위기로 편안함을 제공하는 카페 ‘피카’는 뉴욕에서의 인기를 기반으로 런던, 시드니, 그리고 우리 서울에도 생겼다.

이 밖에 많은 기업에서는 스웨덴의 피카 문화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CEO와 직원들 사이의 간단한 티타임을 가지며 소통을 중시하는 것인데,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그들의 업무 능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그 취지다. 앞으로도 이러한 피카를 벤치마킹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엔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행복의 조건 중 하나는 친구,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이것이 행복의 주요한 변수라고 꼽는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피카는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의식이자 사회적 현상, 그리고 문화다. 스웨덴의 피카 문화는 정신 없이 바쁜 한국 사회와 문화에 꼭 짚고 가야 할 삶의 기준을 고민하게 한다. 오늘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또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우리 피카할까요?”

 

[참고자료]
[DRIFT Vol.4: Stockholm. 아이비라인,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