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나무꾼이 짝이 되었다가 영원히 이별했다는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각자가 디테일한 이야기 내용을 달리 알고 있을 수는 있으나 이야기의 중심적인 흐름은 공유하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다.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없다. 단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경과 소재들을 통해 그 탄생을 추측하거나 짐작할 뿐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오랜 커피 역사에서 정확히 언제, 어떻게 커피가 탄생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커피와 얽힌 흥미로운 ‘설(設)’들이 있다. 커피 애호가라면 한 번쯤 커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리가 어떻게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가질 법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여러 설들을 통해 그 호기심을 해결해보도록 하자.

“염소가 붉은 열매만 먹었다 하면 날뛴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쉽게 접하는 이야기가 바로 ‘염소지기 칼디(Kaldi)의 전설’일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계곡에 칼디라는 목동이 살았다. 염소를 계곡에 풀어놓았는데, 어느 날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활발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제압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니, 빨간 열매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늙은 염소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기운차게 움직였다. 이를 본 어린 목동 칼디가 마을 수도승에게 가져다주었고, 그는 며칠 후 칼디에게 열매를 더 갖다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칼디와 춤을 추는 염소들’ 그림

칼디가 어느 시대 사람이고, 언제부터 커피씨를 볶는 법을 깨우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진 6세기보다 앞섰고, 어쩌면 기원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의 기원에 관련 칼디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주 먼 옛날’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렇듯 커피는 칼디를 통해 맛보다는 먼저 효능에 끌린 이슬람 수도승들 사이에서 빠르게 전파되어 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번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Café)’에 얽힌 설화에 대해 귀 기울여보자.

“힘을 북돋는 음료를 만드는 여인이 있다”

커피(Coffee)와 카페(Café)의 어원은 같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지명인 ‘카파(Kaffa)’에서 따왔다는 설, 기운을 북돋우는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 아랍어로 ‘힘’을 뜻하는 ‘카와(Kahw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리만족하는 통에 아랍어로 포도주를 의미하는 ‘카와(qahwa)’로 불리다가 발음이 변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다 1650년쯤 영국에 커피가 전해졌을 때 헨리 블런트 경(Henry Blount)이 ‘커피’라고 명명한 것이 오늘날까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고, ‘카페’는 커피를 즐기는 장소로 의미를 굳혀갔다.

두터운 철제 용기에 생두를 담아 화톳불 위에서 커피를 볶아냈다는 고대 여성 바리스타/shutterstock.com

흔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뜻하는 ‘카페(Café)’의 경우, 최초의 고대 여성 바리스타로부터 출발했다는 설이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2~3세기경 부족 간 전투를 앞두고 전사들에게 강한 힘을 북돋고 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치러진 ‘커피 의식’이 세월이 흘러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라는 관습으로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커피 의식을 준비한 고대 여성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한 여인이 부족을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커피 생두를 물로 씻고 두터운 철제 용기에 담아 화톳불 위에서 볶아낸다. 볶은 원두를 갈아 작은 항아리에 담아 달이면서 적절한 수율에 도달했을 때 작은 잔에 따라 한 사람에게 반복해 3잔을 대접한다.

이것이 에티오피아인들이 말하는 카페의 모태다. 커피를 대접한 여인의 모습은 지금으로 치면 바리스타와 닮았다. 바리스타 중에서도 커피 생두의 특성을 올바르게 해석해 로스팅으로 향미를 표현해내는, 요즘으로 치면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의 바리스타이자 로스터인 셈이다.

이같이 카페의 탄생은 개개인이 즐기는 음료였던 커피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음용하는 음료로의 도약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를 통해 어느 한 지역에서 즐기던 커피가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었던 배경을 알아보자.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는 『의학 전범』에 “커피가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라고 기록했다. 이는 커피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기록일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이슬람권에 커피를 널리 퍼뜨린 일등공신인 신비주의 수피교(Sufism) 수도승(이하 수피)들이 행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의식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수피 댄스/shutterstock.com

오래 전부터 이슬람 시아(Shiah)파의 한 분파인 수피는 적극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신을 만나려는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이들은 격렬하게 빙글빙글 도는 ‘수피 댄스(Sufi Whirling)’를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수피는 내면적 각성을 강조하면서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성’과 ‘체험’을 중요시 여겼다.

수피교들 가운데 특히 마울라위야(Mawlawiyah) 종단은 수피 댄스에 커피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춤을 추기 전에 빙 둘러 앉아 빨간색 커피잔에 따른 커피를 돌려 마셨다. 빨간색 커피잔은 마울라위야 종단 수피들에게 ‘신과의 합일에 다다르는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들은 커피를 돌려 마시는 의식을 통해 영적인 황홀감을 맛보고, 그들의 최종 목표인 ‘신과의 합일’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 의식은 현재는 ‘세마 의식(Sema Ceremony)’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이슬람권에서 800년간 이어지고 있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카바 신전을 관장하던 수피들은 8~16세기에 걸쳐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동쪽으로 이라크와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더 멀리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이처럼 수피들이 그들의 신, 알라와 소통하는 매개체로 춤과 커피를 애용하면서 커피는 이슬람의 음료로 굳건히 뿌리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외에도 당신만이 알고 있는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가까운 지인과 함께 커피타임을 갖는다면 이야기를 디저트 삼아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그가 이야기를 믿거나 말거나!

[참고 자료]
커피인문학, 박영순, 인물과사상사, 2017.
커피의 역사, 하인리히 E. 야콥, 우물이 있는 집,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