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향과 맛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향과 맛은 커피의 품종, 산지, 수확 및 정제 방법과 유통 과정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자연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중요한 것은 커피가 가진 향과 맛은 ‘생두’일 때는 드러나지 않고 ‘로스팅(Roasting)’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발현된다는 것이다. 로스팅은 말 그대로 열을 가해 무언가를 굽거나 볶는 것이다. ‘생두’ 혹은 ‘그린빈’ 상태의 원두에 열을 가하면 물리적, 화학적으로 변화가 일어나 우리가 익히 봐온 갈색 상태의 원두가 되며 향과 맛을 지니게 된다. 커피의 생산부터 음료로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단계가 중요하지만 유독 로스팅 단계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커피의 향과 맛이 직접적으로 구현되는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커핑 작업도 생두 상태가 아닌 로스팅이 완료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Natasha Breen / Shutterstock.com
로스팅 정도에 따른 원두, 맨 오른쪽은 생두 상태
로스팅은 작업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온도는 250도를 넘으면 안되고 최대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 이상 과하게 열을 가하면 원두가 타버리기 때문에 음용할 수 없다. 생두에 열이 가해지면 포함된 수분은 날아가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성분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커피의 향과 맛이 생성된다. 이 때 수분이 빠지며 원두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부피가 커지며 갈색으로 변한다.
Mark William Penny / Shutterstock.com
로스팅 과정에서 원두의 변화
이렇게 외형적으로 변하는 원두의 상태로 로스팅의 단계를 나누는데, 밝고 연한 갈색부터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갈색까지 총 8단계로 각 단계는 라이트(Light), 시나몬(Cinnamon), 미디엄(Medium), 하이(High), 시티(City), 풀시티(Full-City), 프렌치(French), 이탈리안(Italian)으로 불린다. 열을 가해 어느 정도 수분이 빠지고 원두가 익어가기 시작하면 원두 가운데 센터컷이 벌어지며 1차 크랙(Crack) 단계에 도달하는데 이 때 ‘파핑’이라고 하는 소리가 난다. 이 시점의 원두는 대략 시나몬 로스팅 상태에 해당한다. 여기서 계속 열을 가하면 원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2차 크랙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원두는 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풀시티 로스팅 상태로 변한다.
보통 로스팅은 이렇게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으로 진행되며 로스팅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이 원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작업을 멈추고 로스팅을 완료하지만 이 과정을 두 번에 나누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더블 로스팅(Double Roasting)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1차로 수분을 제거하고 갈색으로 변하기 전 시점까지 볶은 다음 냉각시키고 바로 다시 로스팅 하거나 냉각시킨 원두를 1~2일 정도 후에 다시 로스팅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더블 로스팅은 각각 다른 포인트로 볶은 원두를 혼합하는 의미로 이야기될 때도 있는데 사실 이 방법은 블렌딩에서 더 많이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블렌딩(Blending) 역시 커피의 향과 맛을 내는 작업인데 로스팅이 원두가 가진 고유한 맛을 끌어내는 작업이라면 블렌딩은 이 고유한 맛을 배합하여 창조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Grafnata / Shutterstock.com
로스팅 정도가 다른 다양한 원두
블렌딩은 각각의 원두가 가진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강화하여 좀 더 조화로운 맛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로스팅과 혼합 시점에 따라 혼합 블렌딩(BBR : Blending Before Roasting)과 단종 블렌딩(BAR : Blending After Roasting)으로 구분한다. 혼합 블렌딩은 말 그대로 볶지 않은 상태의 생두를 혼합하여 로스팅하는 방법이며 단종 블렌딩은 각각의 생두를 로스팅하여 혼합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 결과물의 색은 균일하지만 혼합된 모든 원두의 적당한 로스팅 포인트를 맞추는 어려움이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각각의 원두가 가진 특성을 살릴 수 있지만 로스팅 포인트가 달라 블렌딩 후에 색상이 균일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특히 혼합 블렌딩의 경우는 로스팅 작업이 한 번이기 때문에 여러 번 로스팅 작업을 거쳐 변수가 많아지는 단종 블렌딩에 비해 결과물의 품질 관리가 고르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더 좋고 다른 방법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지고 있는 원두, 작업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이는 로스팅도 마찬가지이다.
> 로스팅 컨텐츠 다시 보기
> 블렌딩 컨텐츠 다시 보기
Racorn / Shutterstock.com
로스팅 작업
보통은 로스팅과 블렌딩 작업을 별개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보니 이 두 작업은 커피의 향미를 결정하는 다른 듯 비슷한 작업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로스팅 없이 블렌딩은 있을 수 없고, 방법에 따라서 블렌딩이 로스팅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로스팅과 블렌딩 작업을 종합하면 한 가지 원두를 볶는 경우, 이렇게 볶은 여러 종의 원두를 섞는 경우 그리고 여러 종의 생두를 섞은 다음 볶는 경우 이렇게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한 가지 원두를 볶는 경우는 그 원두가 가진 고유한 맛과 향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블렌딩으로 여러 종류의 원두가 가진 맛과 향을 조화롭게 배합하여 즐기는 방법이다. 싱글 오리진으로 한 가지 원두를 즐기든 블렌딩으로 여러 가지 원두의 향미를 함께 즐기든 어떤 방법이어도 좋다. 로스팅과 블렌딩의 방법과 원두의 종류까지 감안하면 우리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따로 또 같이 커피를 즐겨보자.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커피의 매력이 아닌가.
[참고자료]
매트 로빈슨. 커피 러버스 핸드북. 박영순 외 3인(역). 서울: 커피비평가협회 진서원, 2015.
신기욱 지음. 커피 마스터클래스. 출판사 클, 2015
커피 입문자들이 자주 묻는 100가지. 전광수 커피 아카데미, 벨라루나, 2015
커피 로스팅,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커피 블렌딩,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강승훈. “홈 카페의 꽃, 홈로스팅 #1" 월간 Coffee&Tea.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