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Good trees bear good fruit.)”
신약 성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우리 옛 속담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출처는 서로 다르지만, 두 구절 모두 “모든 일은 근본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기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이치는 커피 열매와 커피 나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생두의 상태, 로스팅, 추출방법 등 커피의 맛과 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생두가 가진 본연의 맛’이 커피 풍미의 6~7할 이상을 좌우한다. 거듭 강조했듯이, 좋은 커피의 핵심은 ‘커피의 품종’이기 때문이다.
커피 나무, 아니 아라비카 종으로 한정하더라도 최소 수십 종류의 다양한 재배 품종이 존재한다. 그 중 최근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인해 티피카, 부르봉 등의 전통적인 재래 품종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향미가 높은 고품질 품종도 더불어 주목 받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품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번 컨텐츠에서는 매력적인 맛과 향미, 혹은 생두의 크기로 커피애호가들의 이목을 사로 잡고 있는 대표적인 품종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스페셜티 커피의 스타, ‘게이샤(Geisha)’
불과 10여년 전, 과일감이 가득한 향미로 커피 업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품종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퍼(cupper), ‘돈 홀리(Don Holly)'가 “마치 커피 잔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극찬해서 크게 유명해진 ‘게이샤(Geisha)’ 커피다.
The Coffee Collective, doraemon-tw/flicker.com
게이샤 커피체리(좌)와 로스팅한 원두(우)
‘신이 내린 커피’라고도 불리는 게이샤는 1930년 초, 에티오피아 서남부의 게이샤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품종이다. 당시 영국 영사 ‘리차드 웨일리(Richard Whalley)’는 에티오피아에서 자생하는 커피 품종 연구를 위해 종자를 수집했는데, 이 목록에 바로 이 게이샤 마을의 커피가 들어 있었다. 이후 케냐와 탄자니아, 코스타리카를 거친 이 품종은 1963년 ‘돈 파치 세라신(Don Pachi Serachin)’에 의해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파나마에도 전해져 재배되기 시작했다. 처음 수확했을 때는 생산성이 좋지 않고 맛이 뛰어나지 않아 많은 농부들이 재배를 포기했다.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게이샤 커피는 파나마의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Hacienda La Esmeralda)’ 농원(이하 에스메랄다 농원)에 의해 재발견된다. 낮은 고도에서 심었던 기존 농장들과 달리, 이곳에선 1,600m 이상의 고지대에 게이샤를 심었고,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에스메랄다 게이샤’의 시초가 된다. 티피카나 부르봉과는 다른 경로로 전해졌지만, 게이샤의 고향이 동일하게 에티오피아 고원 지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게이샤에 딱 맞는 재배 조건을 이곳에서 찾아낸 셈이다.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는 2004년에 ‘베스트 오브 파나마(Best of Panama)’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고, 당시 생두 거래가의 20배가 넘는 가격인 파운드 당 21달러에 낙찰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를 계기로 게이샤는 전 세계 커피 생산자들이 주목하는 고급 스타 품종으로 급부상했고, 많은 농원들의 게이샤 커피를 재배하게 되는 도화선이 된다.
에스메랄다 농원 이미지
2004년 이후 ‘베스트 오브 파나마’ 대회 최고의 자리를 줄곧 지켜오고 있는 에스메랄다 농원의 게이샤 원두는, 지난 해 최고 경매가를 경신하면서 커피 역사를 새로 썼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에스메랄다 카냐스 농원의 ‘베르데스 게이샤(Verdes Geisha)’ 가 파운드 당 601달러(한화 기준 약 67만원)에 낙찰된 것이다. 상상하기 힘든 경매가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획득한 주인공은 ‘시드니 커피 비즈니스(Sydney Coffee Business)’의 ‘제이슨 큐(Jason Kew)’ 대표다. 지난해 개최된 ‘제16회 서울 카페쇼’에 방문했던 그는 ‘고가의 와인’ 빗대어 게이샤 커피와 에스메랄다 농원에 대한 노고와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지난 ‘2017 서울 카페쇼’를 통해 미리 만나본 ‘2018 커피 트렌드’ 편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jesswil28, Country Farm Tours/flicker.com
게이샤 나무(좌), 잎사귀 모양(우)
게이샤 생두의 모양은 가늘고 긴 편이다. 잎사귀 모양은 길쭉하고 좁은 편이며, 줄기는 듬성듬성 가지를 치며 난다. 큰 키에 큰 열매를 맺는 게이샤 나무는 ‘오조 데 갈로(Ojo de Gallo)’라는 커피 녹병에 저항성이 있는 편이지만 생산성은 매우 낮다. 수확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꽤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게이샤가 특별해 진 것은 무엇보다 이 커피가 지닌 섬세하고 복합적인 향미에 있다. 주로 강렬한 꽃향과 과일향, 감귤, 쟈스민, 벌꿀 등 기타 과일 향이 풍부하고 섬세해 산뜻한 신맛이 난다. 과일감이 나는 화사한 느낌의 산미는 게이샤만이 가진 명확하고도 독특한 특징이지만, 바디감은 중간 정도에 속한다.
커피의 신세계, ‘문도 노보(Mundo Novo)’
문도 노보는 부르봉 계열의 ‘레드 부르봉(Red Bourbon)’종과 티피카 계열의 ‘수마트라 종(Sumatra Typica)’과의 자연 교배로 탄생한 품종이다. 1940년대 브라질 상파울루 주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상품성이 인정되어 1950년경부터 브라질 전체 토지에서 재배가 시작되었다. 발견 당시, 맛은 티피카와 유사하지만 열매는 부르봉 보다 더 많이 열려 브라질 커피 산업계에서 문도 노보 종에 큰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문도 노보(Mundo Novo)’라는 이름도 포르투갈어로 신세계(New World)라는 의미인데 이러한 브라질 커피 산업계의 희망이 반영되어 명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문도 노보는 브라질의 기후와 환경에 잘 적응하게 되고,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 중 하나가 되면서 브라질 커피의 약 40%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부르봉보다도 약 30% 가량 더 높아지면서 ‘카투라(Catura)’, ‘카투아이(Catuai)’와 함께 브라질의 주력 커피 품종 중 하나가 되었다. 주로 고도 1,050~1,670m, 강우량 1,200~1,800mm의 환경에서 잘 자란다. 하지만 브라질 이외의 지역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하여 거의 재배되지 못했다.
© en.wikipedia.org
문도 노보 커피체리
문도 노보의 새 잎은 녹색 또는 청록색을 띠며, 생산성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생산 지역에 따라 향미의 차이가 크다. 좋은 것은 신맛과 쓴맛의 밸런스가 적절하고, 혀의 감촉이 좋으며 전체적으로 마일드하다. 약간 고소한 로스트향을 지니는 것도 있다.
다른 품종에 비해 단점도 존재한다. 문도 노보의 커피 나무의 키는 3m 이상으로 큰 편인데, 3m 이상이 되면 기계화 생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매년 나무의 윗부분을 가지치기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체리의 색은 붉은 색을 띠며, 체리의 성숙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한다. 성장력이 좋아서 거의 모든 종류의 병충해에 약하다는 점도 이 품종의 단점으로 꼽힌다.
코끼리콩, ‘마라고지페(Maragogipe)’
간혹 로스팅 하거나 생두를 접할 때, 유독 다른 생두에 비해 크기가 큰 생두를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큰 생김새에 걸맞는 ‘코끼리 콩(elephant bean)’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마라고지페(Maragogipe)’ 품종이다.
Phil Proteau/flicker.com
일반적인 생두(좌측)와 마라고지페 생두(우측) 크기 차이
마라고지페는 티피카의 변종 중 하나로, 1870년 브라질 바이아주 마라고지페 지방에서 발견되어 그 지명을 따 이름 붙여졌다. 나무의 키가 커 긴 줄기 마디와 큰 잎, 큰 씨앗을 가지고 있으며, 티피카나 부르봉 종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 특히 열매는 아라비카 종 가운데 최대다. 생두 크기가 스크린(Screen, 생두 크기를 재는 여과망. 1스크린 =0.4mm) 사이즈 20(Screen NO. 20, 8mm)을 초과한다. 일반적으로 높은 등급의 생두 크기가 17(Screen No. 17, 6.74mm) 정도이니 그 크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생두 크기가 타 생두에 비해 특별하기에 고가에 거래되는 편이지만 크기의 특별함에 비해 생두의 향미에 큰 특징은 없다.
마라고지페는 큰 크기로 인해 일반 원두와 섞일 경우 결점두로 분류 되기도 한다. 로스팅 시 화력이 생두에 골고루 전달되지 않아 고르게 로스팅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고지페만 별도로 모아 수확하면 아주 특별한 맛을 가지게 된다. 전반적으로 향기가 좋고 부드러우면서도 균형 잡힌 맛이 있어 상업적 가치가 있는 고가의 품종으로 거래된다.
마라고지페는 해발 600m~750m에서 주로 잘 자라지만, 생산량이 적은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퍼져 있으며 주로 브라질, 과테말라, 멕시코에서 주로 자란다. 여러 종 가운데 멕시코 ‘치아파스(Chiapas)’ 지역에서 생산하는 ‘리퀴담바 MS(Liquidambar)’가 유명한 품종 중 하나다. ‘리퀴담바(Liquidambar)’라는 풍나무 숲의 이름을 딴 커피로, 마라고지페 품종 가운데 가장 뛰어난 맛을 갖고 있다고 하여 ‘마라고지페 수피리어(Maragigype Superior)’를 줄인 MS라는 명칭을 리퀴담바 뒤에 붙였다. 이 밖에 니카라과에서 향미가 우수한 커피가 생산되기도 한다.
이 밖에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수십여 개에 달하는 각기 다른 커피 품종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이러한 품종들이 급격히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해 9월, 미국 국립과학원(NAS)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2050년에는 현재 커피콩 재배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각종 병충해가 늘어나 생산량 감소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에게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를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환경 보존에 대한 노력과 더불어 새로운 커피 품종에 대한 관심과 이를 동반한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커피 업계를 필두로 새로운 품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병충해와 환경 변화에 강한 커피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자료]
그린커피, 신혜경, 이상규, 커피투데이, 2015
로스트마스터, (사)한국커피협회, 커피투데이, 2013
바리스타, 커피와 사랑에 빠지다, 치밍, 21세기사, 2016
스페셜티 커피 테이스팅, 호리구치 토시히데, 웅진 리빙하우스, 2015
커피 과학, 탄베 유키히로, 황소자리, 2017
커피 아틀라스, 제임스 호프만, 김민준, 2015
‘커피가 멸종된다?’ 지구 온난화로 커피 생산량 감소 위기,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