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하면 프랑스, 맥주하면 독일이 바로 생각나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각 나라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음식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커피로는 어느 나라를 가장 많이 떠올릴까?
미국식 테이크아웃 커피가 보편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커피를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단연 이탈리아를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 아메리카노, 라떼, 카푸치노 등 거의 모든 커피 음료의 밑바탕이 되어주는 에스프레소는 바로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매우 중요한 음식이며, 특히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만큼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커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지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람들, 그들은 왜 매일 에스프레소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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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Café FLORIAN
에스프레소(espresso)는 ‘빠르다(express)’라는 어원을 가진 이탈리아어이다. 높은 압력으로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한 고농축 커피를 말하는데, 한 잔(혹은 원샷)을 추출하는데 겨우 23~28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물과 카페인이 접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카페인 함량도 낮다. 또한 드립 등 다른 방식들은 커피의 여러 성분 중 물에 녹는 수용성 성분만을 추출하지만, 에스프레소는 강한 압력으로 비수용성 성분까지도 추출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에스프레소의 향미를 매우 강하게 만들고 드립 커피와는 전혀 다른 농밀한 맛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에스프레소가 ‘커피의 심장(heart of coffee)’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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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는 추출 양과 시간에 따라서도 종류가 크게 4가지로 나뉘어진다. 짧은 시간에 15ml~25ml 정도의 적은 양을 추출하는 ‘리스트레토(ristretto)’, 25~35ml 정도의 ‘에스프레소(espresso)’, 추출 시간도 양도 리스트레토의 2배 정도되는 ‘룽고(lungo)’가 있다. ‘도피오(doppio)’는 두 배를 의미하는 단어로 앞의 모든 에스프레소 메뉴를 도피오로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카페에서 ‘도피오’는 보통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의미한다.
에스프레소를 처음 맛본 사람들은 향은 좋지만 맛은 쓰고 매우 자극적인 커피라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계속 접하고 마시다 보면 잘 뽑아진 에스프레소 한 잔에서 얼마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쓰지만 기분이 좋고 고소하면서도 풍성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맛이지만 그 특유의 풍부하고 무게감 있는 맛이 역설적으로 개운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이 진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매력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들을 비롯한 육류 위주의 기름진 음식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인들에게 에스프레소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디저트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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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에스프레소가 잘 추출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생성되는 짙은 황토색의 두꺼운 크림인 ‘크레마(crema)’의 양, 색상, 밀도, 지속 시간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크림을 의미하는 크레마는 원두에 포함된 오일을 비롯한 성분들이 가라앉지 않고 표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서, 에스프레소가 빨리 식는 것을 막아주며 또한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전체적인 향미와 퀄리티는 원두 품종이나 추출 방법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므로 크레마만으로 에스프레소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크레마가 적거나 없는 경우는 대부분 원두의 신선도가 크게 떨어지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추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니 참고하자.
이제 에스프레소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었으니 다음 차례는 맛있게 즐기는 일만 남았다.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대부분의 음식들이 그러하듯, 에스프레소 역시 마시는 방법을 알고 마시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에스프레소는 양이 적기 때문에 ‘데미타세’라는 작은 잔에 담는다. 잔은 반드시 뜨거운 물로 예열해서 사용해야 한다. 잔의 크기가 워낙 작은데, 차갑기까지 하다면 에스프레소가 금세 식어버려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주문한 에스프레소의 향을 먼저 맡고 크레마의 풍미를 맛 본 다음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한 두 모금으로 빨리 마셔보도록 하자.
브루드(혹은 브루잉) 커피가 유행을 타는 베스트 셀러라면, 에스프레소는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스테디 셀러이다. 우리는 모두 겪어봤다. 베스트 셀러를 읽다 보면 후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스테디셀러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을. 브루드 커피를 오래 즐겨온 이들이 에스프레소에 빠지는 이유 역시 그렇지 않을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베스트셀러들을 읽었을 뿐이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맛 에스프레소, 이제 당신이 즐길 차례이다.
[참고자료]
아네트 몰배르. 커피중독. 최가영(역). 서울: 시그마북스, 2015.
매트 로빈슨. 커피 러버스 핸드북. 박영순 외 3인(역). 서울: 커피비평가협회 진서원, 2015.
두산백과. “에스프레소”. 네이버 지식백과.
이승훈. “올 어바웃 에스프레소”. 네이버 지식백과.
“좋은 커피를 선별하는 이탈리아인의 기준” COFFEE TV
김은지. 내 입맛에 딱 맞는 60가지 커피 수첩. 우듬지, 2011
이새미. “올 어바웃 커피” 까사리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