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의 세계는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그로 인한 산업혁명은 인류가 불을 발견한 것 이상으로 삶을 크게 변화 시켰다. 특히 증기기관은 해운산업을 발달시켰는데 다른 대륙으로도 항해가 수월해지자 유럽 열강들은 아시아로 뱃머리를 돌렸다. 특히 네덜란드가 적극적으로 아시아와의 접촉을 시도했는데 그들의 손을 가장 먼저 잡은 나라가 일본이다. 이 덕분에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먼저 커피가 대중화되었다. 1700년경 에도시대에 네덜란드와 교역을 위한 임시 교역소, 테지마 섬에서 처음 커피에 대해 일본에 알려지게 되었으나 일반인들에게 널리 대중화 된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1854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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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와 교역했던 부채꼴 모양의 인공 섬, 테지마 섬
1854년, 외국에 개방된 항구 등지에 외국인 체류자가 많아지면서 외국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커피를 들여왔고 그들과 접촉이 잦았던 일본인들이 커피를 맛보기 시작했다. 특히 유학생이나 시찰단, 여행가들은 서양의 식생활을 체험하며 커피 문화를 습득해 그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전파됐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888년 4월 23일,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 가히차칸(可否茶館)이 문을 열었다. 도쿄 중심가에 2층 규모의 목조 건물로 지어졌고 쿠바산 담배나 보르도에서 온 술, 그리고 빵과 버터가 준비되어있는 제대로 된 커피하우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커피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커피를 대용할 도토리나 식물 열매로 만든 음료를 즐겨 마셨는데, 미군PX에서 나온 커피를 판매하는 "준끽사(純喫茶)"가 등장하면서 일본 열도에 커피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Bex Walton / flickr.com(좌), Dennis tang / flickr.com(우)
일본의 대표적인 킷사텐 Café de L'ambre(좌), 융을 이용해 추출하는 모습(우)
일본의 전통적인 커피숍 준끽사 또는 킷사텐은 우리나라의 다방과 상당히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다방'에 비해 '커피'의 본질적인 부분을 깊이 다뤘다는 것이다. 킷사텐에서는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며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수 커피를 내려준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손기술과 맞물려 나선형 드립, 동전 드립, 점 드립 등 다양한 방식의 핸드드립 추출법으로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매장에서 강배전한 원두를 융을 이용해 커피를 내리고 다 내린 커피는 고급 앤틱잔에 담겨 손님 앞으로 제공된다. 이것이 킷사텐, 일본의 전통적인 커피숍 모습이다. 일본의 다도 문화와 서양의 커피 문화가 한 데 모아진 듯한 모습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일본의 대표적인 킷사텐이었던 다이보 커피는 현재 폐점하고 없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긴자의 카페 드 람부르(Café de L'ambre, カフェ・ド・ランブル)를 비롯해 많은 킷사텐에서 일본 특유의 커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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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통모자 논(NON)을 쓰고 커피 열매를 수확 중인 모습
일본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즈음 다른 아시아 국가에는 아예 커피나무가 통째로 전해졌다. 1884년, 모든 국토가 프랑스 식민지로 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아라비카 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그것이 20세기 들어서 이 나라의 주요 수출품이 된 나라, 바로 베트남이다.
놀랍게도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로부스타종을 경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년 70만t 이상의 커피를 생산하는 커피 대국이 되었다. 현재는 커피의 수출액이 쌀보다 많다고 하니 이제 커피와 베트남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세계 2위의 생산 대국답게 베트남 국민들의 삶은 커피와 매우 가까이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음료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그 이유는 커피의 종류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그리고 쓰거나 혹은 달거나, 이게 전부다. 이 나라에서는 커피를 '카페(cafe)'라고 부르며 뜨겁다의 '농(nong)', 얼음을 뜻하는 '다(da)'를 붙여 각각 '카페농', '카페다'로 표현한다. 뜨거운 커피는 카페농이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베트남은 연평균기온이 24.1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국가인지라 시원한 아이스커피 '카페다'를 즐겨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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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으로 내린 커피에 연유를 섞는 모습
베트남 커피는 독특한 방식으로 추출한다. 커피를 주문하면 '핀'이라고 불리는 1인용 드리퍼를 잔 위에 올려준다. 드리퍼에서 커피가 천천히 한 두방울씩 내려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또한 이색적이다. 커피가 다 내려지면 얼음 잔에 담아 마시는데 이것이 베트남식 커피의 기본이다. 베트남 커피의 색깔은 짙은 검은색이며 그 만큼 맛이 매우 쓰다.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도 쉽게 적응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대신 베트남 사람들은 설탕보다 달콤한 연유를 커피에 넣어 마신다. 설탕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연유 특유의 깊고 진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단다. 이 연유가 들어간 커피를 '카페 스어 다(cafe sua da)'라고 부르는데 베트남에 갈 일이 있다면 이 단어는 꼭 기억하라. 외국인도 많이 즐겨 찾는 커피라 발음이 비슷하기만 하면 알아듣는다고 하니 자신 있게 주문하면 된다.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그 나라 만의 커피 문화와 전통이 독특한 커피향을 내뿜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향과 맛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니 우연히 방문한 여행지에서 맡은 커피향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그 나라의 향기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지.
[참고자료]
구대회. “핸드 드립 커피 좋아하세요?” MoneyWeek, 2014.
박종만. “일본의 커피역사가 우리보다 170년이 앞선다?” 네이버캐스트, 2012.
이현정. “베트남 커피를 아시나요” 아시아경제, 2010.
박영순. "식민지배, '아시아 커피로드'를 뚫다". THE ASIAN, 2015.
임영지. "일본 카페 투어 첫번째 이야기". TERAROSA LIBRAR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