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걷히고 하얀 뻥튀기가 한가득 쌓이면 너나 할 것 없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쌀이나 옥수수 같은 자그마한 알갱이가 본래의 몸집보다 몇 배나 되는 크기로 부풀어 올라 고소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기적(?)을 어찌 놀라워하지 않았겠는가? 그 기적은 생두를 로스팅 할 때 '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원두가 부풀어 오르는 모습으로 마주할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콩 볶는 소리와 감미로운 향기로 가득한 기적의 현장을 집에서도 간단히 재현해 볼 수 있지만 로스팅은 그렇게 손쉽게 좋은 결과물을 내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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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은 균일하게 열을 가해 고르게 볶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커피를 만들어내는 과정마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이 변수들에 의해 커피의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로스팅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가장 어려운 과정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은 열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생두에 고르게 열을 가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 더러 열을 가하는 특정 시점에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로스팅 상태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인데, 심지어 잠깐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새카맣게 탄 원두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삼켜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까다롭고 섬세한 로스팅 작업으로 내가 원하는 원두를 일정하게 볶기까지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로스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커피를 '창조' 해낸다는 새로움에 도전하고 나만의 커피를 만든다는 즐거움, 그리고 커피의 본질적인 부분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두의 생산지가 아닌 로스팅한 곳을 커피의 원산지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커피의 생산 과정에서 로스팅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로스팅이 커피의 맛뿐만 아니라 커피로서의 존재감을 부여하는, 다시 말해 향미가 깨어난 진정한 커피로 거듭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스팅을 직접 집에서 한다는 것은 나만의 시그니처 커피에 좀 더 가까워지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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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로스팅 머신
홈로스팅에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전동식 가정용 로스터기, 100~200g 정도를 로스팅 할 수 있는 소형 로스팅 머신 그리고 수망과 프라이팬, 도자기 로스터와 같은 도구들이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수망과 프라이팬 그리고 도자기 로스터를 사용해 홈로스팅에 도전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로스팅을 하더라도 결점두(Defect bean, 불량생두)를 골라내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홈로스팅에서는 육안으로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결점두를 골라내기만 해도 커피의 맛을 끌어올릴 수 있다. 푸른색과 검은색 혹은 적갈색을 띄는 생두들이 대표적인 결점두인데 일부가 깨지거나 조각난 것도 골라내주자. 일련의 과정이 끝났다면 이제 생두를 볶을 차례다.
수망과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수동식 로스팅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된다. 가장 먼저 도구를 일정한 온도에 도달할 때까지 예열을 한 뒤 적정량의 생두를 투입한다. 도구마다 적정량이 다르지만 원두가 '고르게' 볶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 양을 조절하면 된다. 2~5분간은 약한 열을 가하면서 수분을 날린다. 이 과정이 완료될 때 즈음 실버스킨(채프)이 날리면서 생두는 노란빛을 띄게 된다. 그 뒤에는 좀 더 강한 열을 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생두를 볶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반'이라고 하는 생두를 골고루 섞어주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교반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두가 고르게 볶이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후 각 도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타닥거리는 1차 크랙음이 활발하게 들리면 화력을 줄이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로스팅을 멈출지 계속 진행할지를 결정한다. 이때부터는 배출 타이밍에 따라서 로스팅 단계가 나눠지는데 보통 라이트부터 이탈리안까지 8단계로 구분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제대로 구워야 제맛인 커피 – 로스팅 편"
수망 로스팅
생두의 변화를 쉽게 식별할 수 있으며 섬세한 맛과 향을 내기는 어렵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결과물을 선사한다고 평가받는다. 수망에도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크기를 가늠해서 투입할 생두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지름이 13cm 가량 된다면 20~40g 정도가 적당하다. 수용 용량(?)을 넘어가면 열이 골고루 전달되지 않아 얼룩덜룩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니,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도록 유의하자. 특히 수망 로스팅은 불과의 간격으로 화력을 조절하는 직화식 로스팅이기 때문에 강한 열을 가하고 싶다면 좀 더 불에 가까이 다가가 교반을 해주면 된다.
Benjamin Davidson / flickr.com(좌), flickr.com(가운데), flickr.com(우)
프라이팬으로 로스팅 할 때 생두의 변화
프라이팬
오래전부터 로스팅에 사용되어온 전통적인 로스팅 도구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집에서 사용하던 프라이팬보다는 로스팅을 위해 새로 구입하는 것을 추천하며 프라이팬 바닥이 움푹 패어 있는 편이 로스팅에 유리하다. 보통은 프라이팬의 뚜껑을 덮고 로스팅하게 되는데 내부의 열이 순환하면서 보다 골고루 생두에 열을 전달할 수 있다.
도자기 로스터
손잡이가 달린 도기 안에 생두를 넣고 볶는데 전도, 대류, 복사의 모든 열전달이 복합적으로 일어나 직화식보다 안정적으로 로스팅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예열한 상태에서 생두를 넣게 되면 내부가 고온 상태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타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수망, 프라이팬과는 다르게 열이 내부에서 순환하기 때문에 다른 도구들 보다 1, 2차 크랙이 빨리 올 수가 있다. 따라서 투입구를 통해서 생두의 색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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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 후 냉각시키는 모습
각 도구들로 로스팅 하는 도중에 자신이 원하는 원두의 색이나 향이 난다고 느껴지면 로스팅을 멈추고 배출시킨 뒤 달아오른 원두를 즉시 냉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두에 남아있는 잔열로 계속해서 로스팅이 진행되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냉각 방법은 선풍기, 부채질, 쿨링팬 등 자연적인 바람이 가장 좋으며 로스팅이 끝난 직 후 곧바로 냉각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가 쉽게 끓여먹는 라면도 개개인의 취향에 따른 '레시피'가 존재한다. 이 '레시피'는 내 입맛에 꼭 맞는 라면을 먹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성취한 결과물이다. 나만의 라면 '레시피'를 찾은 순간, 맛있는 라면을 먹는 기쁨보다 내가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더 컸을 것이다. 하물며 까다로운 변수들을 섬세하게 조절해야 하는 커피 로스팅을 성공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홈로스팅의 가장 좋은 점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나만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간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커피는 'My way'를 찾는 여정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
[참고자료]
강승훈. “홈로스팅1,2" 월간 Coffee&Tea. 네이버캐스트.
매트 로빈슨. 커피 러버스 핸드북. 박영순 외 3인(역). 서울: 커피비평가협회 진서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