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약 12시간. 서유럽 끝자락에 위치한 네덜란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렌지 군단’으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풍차의 나라’로, 2002년 월드컵의 지켜봤던 국민들은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the Netherlands)’의 정식 명칭이 ‘네덜란드 왕국(Kingdom of the Netherlands)’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더치 커피’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분쇄한 원두를 상온이나 차가운 물에 장시간 우려내 쓴 맛이 덜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콜드 브루(Cold Brew)’가 더치 커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더치 커피를 네덜란드 커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은 더치 커피가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커피가 아닐 확률이 높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지난 더치커피가 아니라 콜드브루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동안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진짜 네덜란드의 커피, ‘Dutch Coffee’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이번 콘텐츠에서 바리스타룰스와 함께 낯선 세계, 네덜란드로 훌쩍 커피 여행을 떠나보자.
커피의 상품성을 일찍이 알아챈 네덜란드
Mocha, Yemen/wekipidia
17세기 모카항에 다다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네덜란드의 커피 사랑에 대한 유래를 찾고자 한다면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를 훔쳐왔다면, 1616년 네덜란드 상인 피터 반 데어 브뢰케(Piter van dan Broeck)는 아프리카 예멘에서 커피를 훔쳐왔다. 그는 모카항에서 커피 묘목을 몇 그루 몰래 빼내 조국인 암스테르담 식물원의 온실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예멘과 네덜란드의 기후 차이. 서안해양성 기후인 네덜란드에서 커피 나무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던 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그러자 막강한 무역 강국이던 네덜란드는 이때부터 커피 재배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1658년 포르투갈로부터 빼앗은 실론섬(현 스리랑카)에서 시험 재배를 거쳐 1696년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 섬(Java)에 커피 농장을 조성했다. 이를 비롯하여 수마트라, 바타비아, 셀레베스, 티모르 지역 등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 산지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을 조성한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이다.
특히, 독특한 향미의 커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특수한 프로세싱도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와 관련이 있다. 커피 가공법과 관련한 생산지 이야기와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바로 이전 콘텐츠인 커피의 ‘급(Grade)’을 달리하는 법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식민지 개척 후 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고, 커피의 상품성에도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시장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루이14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한 커피 묘목은 훗날 아메리카 대륙에 커피 산업을 꽃피우게 한 초석이 되기도 했다.
AM 10:30, koffie time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간식인 와플 과자와 커피/shutterstock.com
과거에 이토록 커피를 사랑했던 네덜란드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월드 아틀라스사(WorldAtlas)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2018년 기준 1인당 커피 소비량 8.4 kg를 기록하며 세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국민적인 커피 사랑을 자랑하는 국가다. (*2017년에는 대표적인 커피소비국 핀란드, 노르웨이를 이어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커피 타임(Koffie time)’이라 불리는 오전 10시 30분이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이 시간은 우리나라의 저녁시간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이나 직장뿐 아니라, 가게, 학교 등 네덜란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자, 이들을 대표하는 문화적 특징이다. 카페는 대개 아침 7~8시쯤 오픈하고 저녁 6시쯤이면 문을 닫는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프랑스처럼 강하게 볶은 커피를 사용하여 진한 커피에 설탕을 넣은 후 물과 크림을 함께 넣은 커피를 즐겨왔다. 하지만 근래에는 ‘북유럽 로스팅’, ‘노르딕 로스팅’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밝은 산미가 느껴지는 라이트 로스팅의 커피를 주로 활용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에 가면 ‘커피숍’ 아닌 ‘카페’에 가라?
네덜란드 커피숍(Coffee Shop) 간판/ wikimedia.com
네덜란드 여행 중에 커피 한 잔을 즐기고자 ‘Coffee Shop’이라는 간판만 보고 매장에 들어갔다가는 당황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의 ‘Coffee Shop’은 합법적으로 대마초(마리화나)를 구입하고 흡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마초 합법 초기에 알코올과 대마초를 함께 판매할 수 없어 커피와 함께 팔게 된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따라서 네덜란드에서 커피를 사 마시려면 ‘커피숍(Coffee Shop)’이 아닌 ‘카페(Café)’에 가야 한다.
다만, 모두가 이 커피숍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8세 이하는 출입금지이며 5g 이상의 대마초는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독특한 커피숍의 광경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이곳의 방문자는 자국민보다 관광객들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네덜란드 여행 중 호기심으로라도 이곳을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국은 속인주의(자국 영역의 내외를 불문하고 국적을 기준으로 자국민에 대한 법을 적용하는 원칙)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면 네덜란드 여행 중 커피숍을 잘못 이용했다가는 불법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키스 반 더 웨스턴(Kees Van Der Westen)의 탄생지
키스 반 더 웨스턴 스피릿(spirit)/keesvanderwesten.com
바리스타이거나 바리스타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알법한 유명 에스프레소 머신, ‘키스 반 더 웨스턴(Kees Van Der Westen)’의 고향은 바로 네덜란드다. 키스 반 더 웨스턴은 뛰어난 성능의 하이엔드 에스프레소 머신을 논할 때 ‘라 마르조코(La Marzocco)’, ‘슬레이어(Slayer)’ 브랜드와 함께 회자되곤 한다. 디자이너이자 설립자 이름에서 브랜드 명을 가져온 키스반 더 웨스턴은 초기에 라 마르조코 네덜란드에서 커스텀한 ‘미스트랄 디자인’으로 양산형 제품을 자체 생산하였으나, 이후에는 독자적 머신을 개발했다. 키스 반 더 웨스턴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최초로 시장에 내놓은 시기는 1984년으로,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젊은 기업이었지만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현재까지도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브랜드 에스프레소 머신들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Eindhoven) 지역 외곽에 위치한 공장에서 수제 공정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한 사람이 한 대의 머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말 그대로 100% 핸드메이드(Hand-made)다. 이 때문에 한 머신의 제작 기간이 3개월 정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공들여’ 탄생한 키스 반 더 웨스턴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 추출의 일관성, 변수 제어, 기능의 편의,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우수함을 자랑한다.
커피 원산지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커피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던 나라, 네덜란드. 이번 콘텐츠를 읽은 독자라면 추후 네덜란드 여행 시에 커피 한잔의 특별함을 만끽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네덜란드 커피의 역사와 문화까지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또한 이곳 ‘커피숍’에 들어가 ‘더치 커피’를 찾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네덜란드 커피에 대한 5가지 사실, 바리스타뉴스, 2018.
콜드브루와 더치커피는 같을까, 다를까?, 아시아경제, 2017.
http://www.netherlands-tourism.com/
https://www.worldatlas.com/
http://keesvanderwesten.com/